제 63회 칸 국제영화제가 12일 개막했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계적인 영화제이지만 유독 올해는 더욱더 관심이 간다. 바로 한국 영화 '시'와 '하녀' 두 편이 나란히 경쟁부문에 올랐기 때문. 또한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와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 주간에, 세종대 재학생인 김태용 감독의 '얼어붙은 땅'이 학생부문 시네파운데이션에 초청되기도 했다. 점점 더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영화의 매력을 논하자면 한 두가지로 끝나지 않겠지만 분명 그 이유는 있을 것. 칸이 선택한 '하녀'를 통해 그 비밀을 훔쳐보자.
▲ 하녀(스릴러/ 106분/ 청소년 관람불가)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면서 살아가던 은이(전도연)는 유아교육과를 다닌 이력으로 상류층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완벽해 보이는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 쌍둥이를 임신 중인 세련된 안주인 해라(서우),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여섯 살 난 '나미', 그리고 집안 일을 총괄하는 나이든 하녀 병식(윤여정)과의 동거 생활은 낯설지만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느 날, 주인 집 가족의 별장 여행에 동행하게 된 은이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집주인 훈의 유혹에 이끌려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행복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훈과 은이의 이 위험한 애정행각은 해라의 눈을 피해 계속되고 이들의 관계는 격렬해져만 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식은 이 비밀스런 사이를 눈치채게 되고 평온하던 대저택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영화 '하녀'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칸 영화제 출품작으로서, 칸 영화제에서 이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전도연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더욱이 1960년대 원작인 '하녀'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특별한 애정을 보인 영화로 인정받고 있던 영화. 이 엄청나다면 엄청난 영화가 임상수 감독의 손에 되살려 진다니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리메이크라고 부르기는 조금 부족하다. 소재와 바탕을 빌려와 뼈대가 같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위에 붙여낸 살점은 모두 임상수 감독의 것인 것. 그래서 원작과 달라진 모습에 실망하는 원조 팬들이 있겠지만 2010년 '하녀'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충분하다. 새롭다고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원작과의 비교 없이 '새로운 영화'로만 본다면 부족함이 없겠다.
'하녀'의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의미를 설명하자면 구차하고 복잡해진다. 이미 먼 옛날 사라진 계급제도를 가지고 돌아와 정작 60년대 하녀를 부렸을 중산층을 현재의 하녀로 만들고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상류층을 등장시킨 것. 항상 상대적인 우리네 관계가 현대에 와서 어떻게 변했는지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더욱이 당하기만 하던 은이가 어느 순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이어지는 충격적이고 대담한 결말은 소름끼치게 차갑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이 섞이면서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하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배우들의 노출연기다. '바람난 가족' 등 임상수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했듯 '하녀'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오히려 다른 영화들 보다 그 수위는 낮은 편. 눈으로 오는 자극 보다는 대사로 오는 자극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영화에서 대사로 등장하는 '아더메치'는 1960년에 유행했던 유행어로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라는 말의 앞글자만 따 만든 단어이다. 은이의 감정과 영화 '하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이 바로 '아더메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