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리운 최창조 선생님께 - 이상훈

이상훈(전주고 교사)

 

선생님의 서울생활도 20년이 넘어 갑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교육과 조교를 맡자마자 서울대로 가신 때가 1988년 2학기 시작 때였습니다. 저는 조교생활을 마치고 부안고, 진안고, 진안제일고, 장수고를 거쳐 다시 진안으로 돌아와 진안여중, 진안중 등 시골 읍내학교에 전전하다가 작년부터는 전주고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대에서 영월, 보은, 남한의 방방곡곡과 북한의 여러 곳을 다녀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역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생각나시는지요.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함께 했던 완주지역 답사 말입니다. 이 책에도 그때 다녀온 곳이 기록되어 있지만 답사 끝머리에 막걸리를 마시던 봉동 어느 허름한 주막집이 생각납니다. 그때가 선생님께서 『한국의 풍수사상』을 세상에 내 놓은 때입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풍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학년 MT때 격포에서 선후배가 모인 자리에서 선생님은 '천둥산 박달재'를 구성지게 부르셨습니다. 저는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죠. 지금도 '천둥산 박달재'가 나오면 눈감고 목 놓아 부르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학교 발령을 받고 결혼을 한 후 저는 줄곧 진안에서 생활하면서 마을 곳곳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이 자료들이 선생님께 조금은 도움이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선생님의 서울 생활을 많은 글들 속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볼 수 있었는데, 서울대 사직은 큰 충격이면서 한편으로는 서울을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서울에 계시지요.

 

기억나시는지요. 선생님과 사모님, 준보, 혜경이가 진안에 며칠 머문 때가 저에게는 아주 즐거운 때였습니다. 고등학생인 준보가 이제 군대에 다녀온 후 경찰에 근무하고, 사춘기였던 혜경이가 학교에서근무하고 있다니 보고 싶군요.

 

대학신문과 지역 문화지인 『문화저널』에 실었던 글을 묶어 책을 내고자 했을 때 주셨던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의 제목을 『우리얼굴』이라 붙여 주시고 과분한 추천의 말씀까지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후 쉼 없이 답사를 했고 그러면서 『진안의 마을신앙』이란 책자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북 일요시사'에 약 20회 정도의 풍수와 민속신앙 정확히 말하자면 비보풍수(裨補風水)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1부에 묶어 증보개정판을 내고자 합니다. 책의 제목을 『우리얼굴』에서 『우리마을』이라 제 스스로 정해 보았습니다. 이는 제가하는 작업의 대상이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을이라는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우리얼굴』 서문에서 밝혔듯 저는 "우리의 민속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는 민속문화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전반에 걸쳐 해당된다) 풍수사상과 관련시킬 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배산임수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입구에 큰 나무 중 하나가 당산나무가 되어 마을굿의 신체로 모셔지는데, 이는 본래 마을입구가 허(虛)하기 때문에 마을이 형성될 때부터 '마을 숲'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흔히 '수구막이'라고 하는데, 마을숲을 조성함으로써 마을을 안정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후에 마을 숲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신성성, 신앙심이 첨가되어 마을에서 당산의 신체로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신체(神體)는 당산나무뿐만 아니라, 돌탑, 선돌 등도 첨가된다. 이렇게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풍수사상이 기본이 되는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마을 1부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입장의 편린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분야에서도 풍수(風水)와 관련시켜 이야기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풍수적으로만 도식화 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는 여러 분야와 관련시켜 종합화시켜야 터 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전한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가 생각하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개념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현장을 보다 치열하게 누빌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같이 언제가 편안한 진안에서 함께 살게 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건강하세요.

 

2010년 전주에서 제자 이상훈 올림

 

/이상훈(전주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