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을 걷다가 발길이 멎은 곳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우뚝 서있는 곳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나무뿌리 위에 걸터앉자 눈 아래로 강물이 보인다. 느리게 흐르는 강물, 그 위에 떠있는 바위틈 사이의 억새와 졸고 있는 재두루미 깃털이 살며시 스치는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강물은 흐르면서 쌓고 나누고 아우르며 스스로 제 기능을 한다. 생명의 순환을 느껴보면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답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옆 고목의 휘어진 뿌리사이에 산자고가 둥지를 틀고 앉아 함께 지내고 있다. 한 뼘도 넘지 않은 연약한 줄기가 살짝 휘어있는데 큰 꽃을 얹고 있다. 여섯 장의 하얗고 길쭉한 꽃잎에는 가느다란 보라색 줄이 나있으며 그 속에 샛노란 수술이 두드러져 곱기도 하다.
가만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물버들 가지와 억새사이의 물결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그림자를 얼마나 지워내려 했었던가! 강물에 붓을 빨아 고요한 섬진강을 그리고 또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