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江)은 생명이다. 다양한 생명체가 태동하는 원천이고, 인간 삶터를 만들어내는 기본 요건이 된다.
강은 역사다. 도시와 농경문화 발달의 촉매제 역할을 해냈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내고 있다.
전북지역에 물길을 둔 크고 작은 하천은 금강과 섬진강·만경강·동진강·전주천·정읍천 등 국가하천 11개와 지방하천 461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북의 역사와 문화·생명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는 하천을 꼽는다면 역시 동진강과 만경강이다.
동진강은 만경강과 함께 농도(農道) 전북을 상징하는 하천이다. 전주와 익산·군산 등 도내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만경강에 비해 주로 한적한 농촌지역에 물길을 둔 동진강은 그동안 도민들의 관심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동진강이 담고 있는 역사·문화적 자산은 만경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읍과 김제·부안 등 도내 3개 시·군을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동진강은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를 흠뻑 적셔내야 하는 지리적 임무를 떠안고 있다. 그러나 하천의 유량이 턱없이 모자라 자연상태에서는 이 같은 역할을 감당해 내기에 버거운 형편이다.
이에따라 강 유역에서는 일제시대부터 하천 개수와 저수지 및 보(洑) 축조 등 농업용수 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섬진강댐(옥정호)에서 동진강 상류로 물길을 끌어내고 있는 것도 부족한 수자원 확보 대책이다.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으로 유역변경, 농업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동진강의 본류와 지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일제의 하천 개수공사로 직선화 돼 인공하천이라 할 만큼 그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강 유역의 역사·문화자산도 풍부하다.
곡창 호남평야를 적시는 동진강은 옛부터 우리 나라 농경의 역사를 대변해왔다. 특히 삼국시대에 축조된 김제 부량면 '벽골제'는 우리나라 수자원 개발의 효시로 평가받으며, 이 곳이 한반도 도작문화의 발상지임을 알린다.
또 최치원과 정극인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읍 칠보·태인의 유교문화는 종종 경북 안동과 비교된다. 이와함께 19세기말 사회 부정과 외세에 항거한 동학농민혁명의 뜨거운 외침도 강물에 녹아 흐르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진강은 새만금 수질문제와 맞물려 또 다른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최근 방조제 개통과 함께 '물의 도시'를 선언한 새만금의 청정 수원이 바로 동진강이다.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관심밖으로 밀려났던 평야지대의 작은 하천이 21세기 환경과 보존의 시대, 다시 전국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동진강과 만경강의 수질환경은 새만금 내부개발 사업의 성패를 쥐고 있는 핵심 열쇠다.
이에따라 정부는 '만경·동진강 하천종합정비사업'을 새만금 개발 동력이 될 5대 선도사업에 포함시켜 중점 추진하기로 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7월 '만경·동진강 마스터플랜 수립'용역에 들어갔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준하는 하천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용역기간은 올 12월까지다. 하천종합정비 마스터플랜 수립 대상에는 동진강 본류와 그 지류인 정읍천·고부천·원평천 등이 포함됐다.
이와함께 전북도는 올초부터 주민참여 프로그램인 '새만금 물사랑 실천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새만금 유입하천인 동진강·만경강에 대한 수질개선 실천 방안을 마련,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다.
하천을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의식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인 정읍의제21추진협의회는 지난해 시민들과 함께 '동진강은 살아있다'를 주제로 하천 역사·문화·생태탐사를 진행했다. 동진강 유역에 삶터를 둔 주민들이 강의 역사와 문화·생태환경을 직접 조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시민과 함께하는 생태 프로그램을 발굴하자는 취지의 하천 탐사활동이다.
전북일보 취재팀이 창간 60돌을 맞아 다시 동진강을 찾는다. 지난 2000년초부터 1년 6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만경·동진강 대탐사'와 2005년 7월~2006년 5월까지 연재한 '만경강 이야기'기획을 잇는 하천 프로젝트다.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 민·관·학협의회'및 '정읍의제 21'과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탐사에서는 강과 함께 흘러온 전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사는 이야기를 촘촘하게 꺼내 놓을 예정이다. 또 전문가들과 함께 하천의 수질과 식생·생태환경 등을 세밀하게 조사, 물의 도시 새만금의 미래도 엿볼 요량이다.
환경과 문화, 보존과 복원의 시대를 맞아 동진강의 속살과 그 곳에 기대어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다 밀도있게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 공동기획 :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