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거리응원 에너지 - 이경재

거리응원은 한국이 원조다. 한국의 길거리 응원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선보였다. 거리마다 광장마다 붉은 물결로 넘쳤다.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축제의 마당이자 폭발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이었다.

 

당시 거리 응원을 펼친 '붉은 악마'들은 2200여만 명에 이르렀다. 강호 포르투갈을 꺾은 뒤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 응원 열기는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400만, 8강 스페인 전에선 500만 명으로 늘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나타내자 분위기도 최고조로 달아오르면서 4강 독일 전 때는 무려 700만명에 이르렀다.

 

독일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 때엔 독일 시민들이 라인강변의 대형 전광판 앞에서 우리 처럼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2002년 우리나라 거리응원에서 자극받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거리응원은 이제 세계 여러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응원문화는 집단심리에서 파생된 강력한 힘이다. 수많은 개인이 뭉쳐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고 이루어 낸 것이 바로 거리응원이다. 이런 의식이 개개인에게 체득화되면 누가 누구한테 참여하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이뤄진다.

 

그렇다면 왜 이런 거리응원이 가능한가. 거리응원에 참여함으로써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사회· 정서적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풀이한다. 거리에 나가 집단 속에서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은 애국심의 발로이자 자신을 과시할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심리학적 풀이가 아니더라도 집단에 묻혀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효과도 있다. 골문을 가른 슛 한방으로 모든 근심 걱정을 날려 보낸 그 맛을 잊지 못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

 

4년 만에 또 다시 거리응원에 불이 붙었다. 우리나라와 그리스 전이 열린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100만 명, 전북지역에선 5만여 명이 거리응원을 펼쳤다. 모레(17일) 오후 8시30분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전이 열린다. 16강 진출의 중요한 관문이다. 또 한번 거리응원의 폭발적 에너지가 필요한 때다.

 

거리응원은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이같은 폭발적인 국민적 에너지가 사장되는 게 안타깝다.

 

/이경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