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경남 하동의 토지 드라마 셋트장을 활용한 지역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이 드라마의 제작본부장이 드라마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하고자 하동으로 이사를 했고 농사라고는 한번도 해보지 않앗지만 밭도 갈고 배추씨도 뿌리고 무우도 심고 했나봅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저에게 농사를 지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유기농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보면 뺨을 한대씩 때려주고 싶다는 했습니다. 아마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성과가 없는 일인 줄 실감한 모양입니다. 더구나 유기농을 하면 수확도 없는데 일만 힘드니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합니다. 그래서 유기농업을 하시는 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존경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김치 국물의 양념까지 아까워 밥을 말아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어그리-라이프(Agri-Life)라고 하는 운동이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누구나 농업을 경험하고 농촌을 느끼며 농민과 친근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 내에 텃밭을 만들어 경작하는 것을 도와주고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도시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설을 농촌에 만든다고 합니다. 귀농을 돕기도 하고 영농조합이나 영농회사에 취업을 돕기도 합니다. '인생 이모작'이라 하여 퇴직 후에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도시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의 삶은 농업과 연계되어 있으며 농촌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항상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그리-라이프입니다. 우리 말로 구지 옮긴다면 '농업에 그 근본을 둔 삶' 정도가 되겠지요.
오래 전부터 농산물 개방과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그 우려의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십년 했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고 그 때 마다 정부는 우리나라 농업, 농촌에 많은 정책자금을 지원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반 없어 보입니다. 저는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농업과 농촌에 투자하기 보다는 오히려 거꾸로 도시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업과 농촌에 꼭 필요한 투자를 도시로 돌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 과정에 농민뿐만 아니라 도시 소비자들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농업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농촌은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농민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고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다 라고 느끼기 바랍니다. 그 방법만이 급변하는 농업 외적인 변화에 농업과 농촌을 든든히 지켜줄 수 있는 방패막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능성 쌀을 만들고 포장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규모화로 농산물의 생산비를 낮추는 일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인근에서 농사짓는 일을 경험했으면 합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농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도시의 삶이 농촌의 삶과 같고 농촌에서의 삶이 곧 도시의 삶과 같아졌으면 합니다. 양념까지 아까워하는 하동의 초보 농군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농업정책이 대상이 단지 농토에서 일하는 농민들만이 아니라 도시에도 살고 있는 전국민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임경수(사회적기업 이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