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절인 16일 오후 2시 전주 덕진공원. 수백여명의 노인들의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서 단오절 행사를 즐겼다. 노인들 사이로 한 손엔 쓰레기를 줍는 집게, 다른 손에는 쓰레기를 담는 검정 비닐봉투를 든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전국의 축제와 행사장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는 권호석씨(74·장수군 천천면)다. 1969년부터 쓰레기를 주어왔다는 권씨는 단오절을 맞은 덕진공원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신이상자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요. 그래도 거리가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가슴 뿌듯합니다."
권씨는 일제강점기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은 일제의 강제노역에 끌려갔다가 숨졌다. 권씨가 일곱살 때 일이었다. 17세 때는 국군에 자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제대 후 권씨는 10년 계획을 세웠다. 자기 명의의 논밭을 만드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일했고, 운도 좋아 6년 만에 꿈을 이뤘다. 그리고 쓰레기를 줍는 일에 눈을 돌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5남매를 둔 가장이었지만 생계는 부인이 책임졌다.
"이런 일은 가정을 생각하면 못 해요." 권씨는 부인에게 한없이 미안하다고 했다.
권씨는 전국구다. 진해 군항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광주비엔날레 등 안 가 본 축제가 없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에는 3개월이 넘게 머물기도 했다. 이렇게 전국을 뛰다보니 궁핍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잠은 길에서 청하기 일쑤고, 밥도 거르는 날이 먹는 날보다 많다. 그래도 요새는 경력이 쌓이다보니 전국의 노점상들과 낯을 터 공짜 밥도 많이 먹는다.
"보람이요? 많죠. 언젠가는 한 학생이 커서 할아버지처럼 되겠다고 편지를 써 왔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지요."
쓰레기를 줍다보면 길가에 떨어진 동전도 많이 줍는다. 권씨는 주운 동전을 집안에 고이 모셔둔 돼지저금통에 담는다. 그리고 연말에 장수지역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그렇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에게 권씨는 본받을 점이 많은 할아버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멀었어요. 의식개혁이 필요하죠. 기초질서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생활도 잘 할 수 없어요."
권씨는 먹물로 글을 새겨 넣은 흰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서로 양보하고, 기초질서 잘 지켜서, 문화국민 됩시다.'
수십 년간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를 통해 권씨가 시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