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축구(蹴球) - 장세균

 

우리 축구가 아르헨티나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국민적 애정만은 패배하지 않았다. 축구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결집체이기도 하다. 각종 현안으로 분열된 우리가 월드컵 대회 기간 동안만은 하나가 되는것이다. 그래서 축구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번의 남아연방 공화국 월드컵 본선에의 출전은 월드컵 본선 진출 8회째이다. 월드컵 대회는 항상 새로운 축구 영웅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하기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이다. 스위스 월드컵에 대한 일화가 많다고 한다.

 

옛날에는 우리가 가난했기에 스위스 월드컵 대회 참가를 위해 항공권을 구입할만한 재력이 모자라 주한 미군에게 신세를 졌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은 겨우 미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스위스로 날라갔는데 그것도 예정된 제 날짜보다 늦게 도착함으로써 개막식에도 참석을 못했다고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첫 경기가 항가리전(戰) 이었는데 이 날짜도 못지켜 주최측의 경기 조정으로 도착 다음날에야 항가리전을 치루었다고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4강을 했으니 장족(長足)의 발전을 한셈이다. 축구의 역사는 오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볼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것이 로마 시대에는 "군사경기"로까지 발전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때 이것을 보급시켜 영국에서 근대 축구의 기원이 이루어 진것이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흐른뒤 1800년대 와서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써의 모양을 갖추게 된것이다. 그리고 영국에 유학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 나라에 전파되기도 하고 영국인 목사, 선교사, 군인, 상인들에 의해서도 각국에 소개되었다. 드디어 1904년에 국제 관리 기구로써 "피파(FIFA)가 탄생된 것이다.

 

"피파"의 공식명칭은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이다. "국제 축구 연맹"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도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가 있었는데 소의 방광에다 바람을 낳어 차기도 했고 통일신라때 축국(蹴鞠)이라는 것도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한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