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리산은 초록이 한창 싱그럽다.
그 초록을 가만히 보면 봄의 연두도 아니고, 초록이 지쳐 단풍들기 전 한여름의 검은 초록도 아니다. 거기에 산딸나무, 층층나무, 때죽나무들이 흰 꽃을 피어내 그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봄에 피는 노란 꽃들에 이어서 흰 꽃이 지천이면 여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이렇게 사시사철 어김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것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흐름에 경이로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다양함과 무궁무진함은 우리를 끝없이 감탄하게 한다. 처음엔 시선을 빼앗는 돋보이는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지만 요즘엔 숲의 각양각색의 모습과 질감, 향기에 새록새록 매력과 애정을 느낀다. 특히 쥐똥 같은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쥐똥나무, 물에 가지를 담그면 푸른 물이 나온다고 하여 물푸레나무라 이름 지어졌는데, 그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잘 표현해 지어진 이름들을 보면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푸름이 한창 더해가는 6월, 푸른 숲에 게으름을 피울 데로 피우다 이제야 새순을 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자귀나무인데 모내기철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잎을 내미는 이 나무는 평소 눈에 띄지 않다가 그 꽃을 피우는 시기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곧 그 꽃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때가 되어간다.
자귀나무는 보통 6월에 꽃을 피운다. 마치 선녀들이 옷을 장식할 때 쓸 것만 같은 분홍색 작은 술이 사뿐히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다. 밤이 되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해 작은 잎들이 서로 마주보며 딱 붙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는 모습이 귀신같다고 해서 자귀나무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잎이 서로 마주 닫히는 특징 때문에 합혼수, 야합수 등 이름을 가지고 있고, 예로부터 자귀나무의 꽃잎을 베개 속에 넣거나, 신혼부부의 창가에 이 나무를 심어 부부의 금슬이 좋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10월이 되면 콩깍지 모양의 열매가 스산한 겨울바람에 부딪쳐 달가닥, 달가닥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시끄러워 꼭 여자의 혀와 같은 나무라는 뜻으로 여설목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농부들은 자귀나무의 마른가지에서 움이 트기 시작하면 서둘러 곡식을 파종하고, 자귀나무에 첫 번째 꽃이 필 무렵이면 밭에 팥을 뿌렸다. 또 농사에서 중요한 소가 이 나무의 잎을 잘 먹기 때문에 소쌀나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농부들의 눈에는 자귀나무가 참 예쁘게 보였을 것 같다.
자귀나무 이야기 뿐 아니라 숲과 숲을 이루는 수많은 나무들과 동물, 하늘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국립공원에는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황홀하고 경이롭고 역동적인 우리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고 싶은 것은 단지 국립공원 소장으로서의 욕심만은 아니다. 지구온난화 등 자연이 주는 환경위기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환경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욕심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에너지와 열정을 얻어 다시 생활 속에서 활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공유되길 바란다. 더불어 국립공원의 다양한 생태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새로운 방법으로 발견해 이 땅에 살아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그 출발이 국립공원이길 바란다.
/정용상(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