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서쪽 능선 아래 금산 땅의 비류동과 황지동 자락. 사람들이 '에덴 동산'이라 부르는 다솜터 공동체마을이 있다. 다솜터는 사업가 서평재가 이상향을 그리며 건설한 일종의 낙원 프로젝트. 초가집 한 채를 배정받아 다솜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게 된 구문보는 그 곳에서 인간 본성의 여러가지 근원에 대한 고민도 커진다. 그러는 사이 촌장의 딸 오초혜와 인연을 맺게 되고, 남녀가 가정을 꾸리는 것이 금지돼 있는 다솜터에서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된다.
아름답고 깔끔한 문체를 가진 중견 소설가 이병천. 그가 꿈꾸는 에덴동산은 어떤 곳일까?
그의 새 장편소설 「에덴 동산을 떠나며」(문학동네)는 이상향에 대한 진지한 사유다.
"언젠가 때가 되면 참으로 그렇게 하고 싶던 날들이 있었다. 산중에 숱한 집을 지어다가 부수고 다시 짓고, 아는 얼굴들을 추려 집 한채씩 지어주었다가 빼앗은 다음 도로 내주고, 화페를 발행했다가 찢기도 하고, 가상의 내 공화국에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순서를 정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기도 하고… 말하자면 이상사회를 그려보곤 했던 것이다."
그는 "그 때 차마 실현시키지 못했던 꿈을 소설로 세운 작품"이라며 "에덴의 설화 이후 시도됐던 수많은 파라다이스들이 덧없이 스러져야 했던 역사적 사실도 내 창작열에 불을 지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에덴 동산을 떠나며」는 1년여의 구상작업을 거쳐 2007년과 2008년 한 지방일간지에 연재했던 것. 구문보의 시각으로 보는 다솜터는 김제시 금산면 금곡리 동곡마을과 그 산자락 일대가 모델이 됐다. 이 곳은 증산교 창시자인 강증산이 약방을 열었던 곳이며, 조선 중기 문신 겸 사상가인 정여립이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상향과 함께 이 소설을 지탱하는 또하나의 축은 사랑. 결국 서로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구문보와 오초혜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낙원을 쫓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이상향과 욕망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제목이 「에덴 동산을 떠나며」가 된 것에 대해 그는 "내가 그려 보인 사회도 완전하지 않은 듯" 해서라고 설명했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인상적인 첫 소설집 「사냥」에서부터 중편집 「모래내 모래톱」, 수준 높은 무협역사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저기 저 까마귀떼」 등 작품마다 단단한 구성과 유연한 흐름을 통해 삶의 깊이를 보여줬다. 현재 전북작가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