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비리라는 말은 지역주민들이 듣기에 매우 거북한 표현이다. 지역 전체, 또는 구성원들이 마치 비리집단인 것처럼 비칠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토착비리는 없어져야 할 대상임엔 틀림 없다. 사회질서를 깨뜨리고 경제행위를 왜곡시키는 사회악이기 때문이다.
과거 토착비리의 주인공들은 대개 지역 유지들이었다. 힘 깨나 쓰는 유지들이 권력과 결탁해 잇권에 개입하고 이득을 취하는 따위의 행태들을 보였다. 인허가와 공무원 인사, 공사 수주나 단속 무마 조건의 잇권 챙기기 수법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과거 전북지역에 나돌았던 '5적(賊)'이 좋은 예다.
이젠 토착비리도 진화하고 있다. 민선 이후 지역의 권력이 단체장에 집중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아무리 유력한 유지라 할지라도 단체장·지방의원 선거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개 털'이나 다름 없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지역의 권력의 핵심이고, 주변 세력들이 과거 유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동에 따른 토착세력의 판도가 변환되고 있다.
이런 구조적 변화를 이해 관계자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새롭게 부상한 이들 권력의 핵심과 연(緣)을 맺기 위해 분주하다. 단체장은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다. 비리도 선출직과 관련한 구조적인 비리로 특화하고 있다. 이른바 '신(新) 토착비리'다. 토착비리를 없앨라치면 이들 핵심에 대한 정보와 관리가 첩경일 터이다.
이런 유형의 비리가 터진다면 단체장도 그 책임을 벗기 어렵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본인만 도리질 친다고 부정되겠는가. 다산(茶山)이 강조한 목민관의 표상은 청빈과 청렴이었다. '청렴한 목민관의 행장은 이부자리에 속옷, 그리고 책 한수레쯤이면 된다'고 했던가.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형제들 조차 관저에서는 만나지 않았다.
단체장·지방의원들한테 다산과 호치민의 철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캠프사람만 끼고 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신 토착세력의 특권적 행태를 부추길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깜'도 안되는 인물을 특정 자리에 앉혀 막걸리집 안주꺼리가 되고 있다. 어느 사업은 누구한테 간다는 소문도 나온다. 선거가 끝나면 비리의 시작이다.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