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람 선생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생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폐가나 다름 없었다. 특히 가람 선생의 문학관이 없는 현실에서 생가에서 조차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 10일 방문한 가람 이병기 생가는 사람의 손길이 끊긴 지 오래였다. 한 쪽 담장은 무너지기 시작해 장마철 붕괴를 걱정케 했으며, 흙벽에 발라놓은 백회는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마루와 모정 바닥은 뜯어져 있었고,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과 곤충 사체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었다. 장독이 깨져있는 등 생가 내 물품 관리도 소홀했고, 목조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소화기 점검 및 정비일자는 2006년 7월에 머물러 있었다.
마당의 풀들은 말라죽고, 가람 생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뒷뜰 대나무숲은 지저분하게 자라 손질이 필요했다. 생가 앞 벤치에서는 등산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주차장에는 썩은 양파들이 나뒹굴고 있어 선비의 정결함을 느낄 수 없었다.
방명록으로 내놓은 학생용 연습장은 낙서장이 된 지 오래. 어린 아이들이 장난스롭게 써놓은 욕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방명록에는 생가의 보수와 관리에 신경 써달라는 방문객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익산시 관계자는 "도 예산 지원이 줄어들어 올해는 지붕 개량 사업도 예년보다 적은 예산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며 "내년에 반드시 예산을 확보해 전반적으로 생가를 보수하겠다"고 말했다.
가람 선생 생가에 대한 관리 소홀 문제는 이미 몇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된 바 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방문단이 가람 선생 생가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생가가 초라하다는 이유로 방문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택회 익산문인협회 회장은 "가람 선생 생가는 관리인이 따로 없어 가람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고 있는 정도"라며 "관리가 소홀한 정도가 아니라 엉망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생가에서 가람 선생의 문학성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는 '비2'가 인쇄된 현수막과 동상 옆에 세워진 '고향으로 돌아가자' 시비 뿐이었다. 이회장은 "해설사도 배치돼 있지 않아 누가 찾아와도 설명해 줄 사람이 없다"며 "고창 서정주나 군산 채만식 등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문인들까지 문학관이 세워진 마당에 현대시조의 횃불을 밝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까지 치른 가람 선생의 문학관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이동희 전북문인협회장은 "가람 선생은 시조 문학의 중흥을 이뤄낸 현격한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명이 소홀했다"며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산이자 자랑으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학관 건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