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일제강점기 도내 '저항 문학' 새롭게 조명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 '전북현대문학'펴내…소설가 김태수 도전정신 소개

1924년 12월호 「영대」(靈臺)를 들추면 백주(白洲) 김태수의 소설'백주'에 '전부 삭제'가 쓰여 있다. 1925년 11월호 「신민」(新民)에도 그의 소설'한야(寒夜)'는 송두리째 뜯겨 있다. 당시 일본은 단행본의 발매·반포 금지·삭제·압수 등을 통해 검열했다. 그와 같이 작품이 모두 지워진 일은 드물었지만,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그는 잊혀진 존재였다.

 

오하근 원광대 교수는 「전북현대문학」(신아출판사)을 통해 "그를 한국현대문학사에 불러들여 식민지시대를 극복한 도전정신을 재조명하고 선구자의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주는 1920년대 신경향파 관념주의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로 변화시키고, 목적문학을 제시한 사회주의자라는 설명도 더해졌다.

 

윤규섭은 사회주의 운동으로 반일 저항문학을 지향했다. 변절한 최재서가 「인물평론」을 청탁했을 때 친일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주의지를 보여줬으며, 친일지 「국민문학」에도 한 편의 글도 싣지 않았다. 분단시대의 질곡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양심은 오늘날 우리에게 커다란 귀감이 된다. 하지만 월북했다는 이유로 업적은 커녕 그의 존재감은 없었다. 오 교수는 "숨어있는 이들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 잡아주는 게 책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가 펴낸 「전북현대문학」 (상·하)은 전북 현대문학사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귀한 결실이다. 「시사전북」의 기고(1996)와 「전북현대문학」(1996), 잡지에 실렸던 글이 모두어졌다. 전북현대문학평론사(1920~1940)엔 이익상 유엽 김환태 윤규섭의 문학이론과 작품에 관한 평가를 따로 실어 새롭게 조명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 대한 섣부른 칭찬은 지양한다.

 

평소 "나는 태 내는 게 싫어"라고 수줍게 고백하곤 했다. 교수 시절 보직 교수도 한 번 안했고, 문화예술단체 가입도 꺼려했다. 패거리를 만들어서 잰체하는 것을 싫어했다. 떠벌리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다들 서울로 몰려가던 시절에 지역을 지키며 지금의 전북문단을 키워냈다. 물론 전국에서 알아주는 탄탄한 문학의 숲을 캐워낸 것은 수많은 선배들이 한여름 땡볕의 그늘을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오 교수는 자신에게 늘 허물없이 대해주었던 신석정 시인에 관한 평론집과 김영랑론에 관해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나이테가 두터워질수록 나무의 결은 아름다워지듯 그의 작품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김제 출생인 그는 '목정문화상(2002)'을 수상했으며,「김소월 시의 성상징 연구」, 「김소월시어법 연구」, 「한국 현대시 해석의 오류」 등을 펴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