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경기전의' 어떤 내용 담고 있나

태조어진·경기전 자료 총 망라…경기전 연혁·구조·제례·어진보수 등 담아

조경묘 경기전 도형 (desk@jjan.kr)

'(태조 어진은) 비단 1폭으로 길이는 15자 쯤이고 넓이는 5자 쯤이다. 단정히 두 손을 마주잡고 정면을 향하였으며, 수염이 희고 익선관을 썼으며, 청색의 소매 좁은 용포를 입고 옥대(玉帶)를 맸으며, 검은 가죽신을 신고 용상에 앉아 있다. 영정 위에는 홍색과 녹색의 술이 늘어뜨려져 있고, 위 아래 옥축(玉軸)이 족자 모양 같다.'

 

'즉각 진전으로 들어가 수문장 이우상과 수복들과 더불어 권축의 묶인 끈을 풀고 궤 안에 봉안하고 붉은 노끈으로 밖을 쌌으나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복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소리가 경기전 안에 진동했다. 정신을 수습하고서 어진을 높이 들고 경기전 문밖으로 나갔는데 수문장은 어깨에 메고 참봉은 옆구리에 끼었다. 동쪽 성문에 이르니 그때 성은 이미 함락되었다.'

 

「경기전의(慶基殿儀)」 중 '영정의(影幀儀)'에는 재질과 크기, 형상 등 태조 어진에 대한 양식(樣式)이 나와있다. '경기전참봉 장교원 실록'은 동학농민운동을 '난리'로, 농민군들을 '우리나라 백성이 승냥이가 된 것'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농민군에 의해 전주성이 함락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태조 어진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좌)이희권. 이동희 (desk@jjan.kr)

전주시와 전주역사박물관이 「경기전의」를 완역해 펴낸 「국역 경기전의」는 경기전 철망 보수에 들어간 물자까지 적어놓은 태조 어진과 경기전에 관한 제반 사항들에 대한 기록이다. 아쉽게도 1872년 태조 어진 모사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지만, 1906년까지의 문서가 실려있어 조선 멸망 직전까지 경기전 관련 문서들이 집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경기전 도판을 맨 처음으로 이어 전주의 형세와 태조 선대들에 대한 기사가 앞에 나오는 등 나름대로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예를 들어 분향에 관한 내용이 한 장에 모여 있지 않고 앞과 뒤에 떨어져 나오는 등 성격별로 정리돼 있지 않아 번역 과정에서 책의 편자와 무관하게 내용별로 모아서 소개했다.

 

내용적으로는 크게 '전주의 형세와 태조 선대의 유사' '경기전 연혁과 구조' '경기전 관리 조직' '경기전 제례' '어진 이·환안과 거둥' '태조 어진과 경기전 관리' '태조 어진과 경기전 보수' '경기전비 건립'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희권 전북대 명예교수와 함께 번역을 맡은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태조 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당장 어진 봉안 행렬 등의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데, 「경기전의」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관장은 "정해년 대화재 때 전주의 긴박했던 상황들과 동학농민혁명 때 전주부성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등 「경기전의」는 경기전과 관련된 당시 전주지역 상황들도 잘 보여주고 있다"며 "한편으로 조선 후기 물가를 비롯한 경제상황, 지방행정체제 등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