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가 어떤 판소리를 추구했는가를 알려면 <춘향가> 를 살펴봐야 한다. <심청가> 는 박동실의 <심청가> 와 정응민의 <심청가> 가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보가> 는 대체로 송만갑 바디로 되어 있다. 그러나 <춘향가> 는 여러 사람의 소리가 부분마다 다르게 섞여 있는데, 그렇게 짠 이유를 김소희 자신이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소희는 <춘향가> 를 자기 자신의 견해에 따라 새롭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춘향가>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심청가> 심청가> 춘향가>
대체로 김소희의 <춘향가> 는 정정렬 바디가 중심이다. 그런데 결연 부분은 정응민 바디로 짰다. 이 부분에서 정정렬 바디는 정응민 바디에 비해 이도령을 비하한 부분이 많다. 춘향이가 그네 뛰는 모습을 보고 반해버린 이도령을 방자가 골려주는 대목, 이도령을 엄지발로 세워놓고 춘향집을 가리키는 대목 등에서 사랑에 눈먼 이도령은 능청스런 방자에게 실컷 조롱당한다. 그러나 정응민 바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없거나 축소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이도령은 점잖은 체모를 유지한다. 그러니까 결연 부분에서 정응민 바디를 채택한 것은 이도령을 체모 있는 도련님으로 그리고자 하는 의도의 소산이다. 춘향가>
첫날밤을 지내는 대목을 정정렬 바디에서는 이도령과 춘향이 춘향모 몰래 첫날밤을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김소희는 이 대목을 춘향모 허락 하에 지내는 것으로 부른다. 춘향모 몰래 자기들끼리 첫날밤을 지내는 것에 대해 '지조가 없는 춘향이다 뭐다 이런 소리도 허구 비평도 했'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송만갑 바디에 있는 '불망기'까지 덧붙이고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결연이 불륜이 아니라, 최소한 춘향모의 허락과 이도령의 서약에 의한 것으로 변명함으로써 지조있는 춘향의 이미지를 최대한 보호하려는 배려일 것이다.
'사랑가'는 정응민의 것으로 했다고 했으나, 정응민 바디에 있는 '궁 자 노래'는 넣지 않았다. '궁 자 노래'는 상당히 노골적인 성묘사가 있어 뺀 것으로 생각된다.
'이별가'는 다시 정정렬 바디로 돌아갔다. 정응민 바디 '이별가'가 지나치게 짧기 때문에 정정렬 바디로 하였다고 한다. '이별가'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슬픈 대목이 많다는 것이다. 길이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정정렬 바디는 훨씬 슬픈 곡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병욱은 눈물의 바다를 이루면서 짜여졌다고까지 말했다.
'십장가'는 송만갑 바디로 돌아온다. 그 이유를 김소희는 슬픈 맛이 있으면서도 '우람하게 반항하는 성음 그대로 가사와 곡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리의 슬픈 맛을 살리면서도 춘향의 굳센 정절을 강조하려 했다는 말이다.
'옥중가'를 박동실 바디로 한 것은 '누가 듣든지 가슴을 울리는 그런 슬픈 곡은 두 분(정정렬과 송만갑)이 다 못 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슬픈 소리에 대한 경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선택에서 대체로 일관되는 것은 슬픈 대목을 늘리고, 속된 표현은 제거하려는 경향이다. 이도령을 비하 혹은 희화화시키는 부분은 축소하고, 춘향의 저항과 고난은 강조한다. 이렇게 해서 이도령은 본래의 신분과 지체에 맞는 고상한 인물로, 춘향은 지조 있고 정숙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김소희의 <춘향가> 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흐름은 음악적 고려이다. 김소희는 음악성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래서 어떤 부분이 다소 고상한 이도령과 지조 있고 정숙한 춘향 만들기와는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음악적으로 훌륭할 경우 채택했다. 이 때 고려된 음악적 특성은 슬픈 것, 그리고 심심하지 않고 산뜻한 것, 곧 세련미를 갖춘 것이다. '정응민 바디 사랑가'나 '오리정 이별'이 채택된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춘향가>
이러한 지향성은 여성적인 판소리 지향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래서 김소희의 <춘향가> 는 점잖고, 우아하고, 슬프고, 지조 있는 <춘향가> 가 되었다. 그 <춘향가> 는 김소희가 여창으로서 자신의 조건에 맞는 판소리를 적극적으로 추구한, 여성적인 판소리 지향의 성공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춘향가> 춘향가> 춘향가>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