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선생(1935~)은 1955년 그가 첫 선을 보인 호남살풀이춤으로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춤 분야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어릴 때부터 춤이 좋아 춤만을 좇아온 길. 남는 건 장구와 빚 뿐이었지만, 춤때문에 살아왔다. 1996년 그렇게 그는 문화재가 됐고, 지난해 봄에는 대장암 수술까지 받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전북무형문화재 제17호 한량춤 보유자였던 고 금파(金波) 김조균 선생(1940∼1998)은 간암으로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중학교 3학년때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흑장삼을 입고 춤을 췄던 소년. 그러나 그는 서울의 큰 무대를 마다하고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와 전주춤의 뿌리를 지켜왔다.
'전북 춤의 쌍두마차' 호남살풀이춤과 금파 한량춤의 깊고 고운 숨결이 중앙 무대에 펼쳐진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는 '명인 명창 공연'에 호남살풀이춤의 최선 선생과 금파 한량춤의 김무철씨가 나란히 오른다.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명인 명창 공연'은 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한국의집 전통예술극장에서 계속되는 상설공연.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 명인들이 초대됐다.
8일부터 10일까지 공연되는 금파 한량춤은 금파 선생의 장남인 김무철씨가 선보인다. 이번 무대를 위해 몸무게를 감량한 그는 투박스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이 있는 아버지의 춤을 되살려낸다.
금파 한량춤은 한량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자태와 남성의 역동적인 멋이 살아있는 작품. 금파 한량춤의 독특한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의 여유있는 산세와 넉넉한 평야 지대의 자연적 순응이 춤 안에 담겨있다.
호남살풀이춤은 예능보유자인 최선 선생이 직접 25일부터 일주일간 선보인다. 최선 선생은 "무척 영광스럽다"며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한국의집 공연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호남살풀이춤은 깊이 가라앉는 호흡의 춤사위와 엇가락을 타는 멋이 일품. 공중에 뿌려지는 긴 수건은 정갈하면서도 시원스럽다. 맺고 풀어주는 가락에 고운 선을 실어내는 춤사위로, 정·중·동의 미학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