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문화원, 백주 김태수 창작집 '황혼에 서서' 출간

서거 30주년 맞아 미발표된 단편소설·희곡 등 수록

1924년 12월호 「영대」에 수록된 김태수의 소설 '백주'가 전부 삭제됐다. 1925년 11월호 「신민」에도 그의 소설 '한야'는 사라졌다. 당시 일본은 발매 금지·삭제·압수 등을 통해 작가들의 단행본을 철저하게 검열했다.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

 

부안문화원(원장 김원철)이 펴낸 부안 출생인 백주(白洲) 김태수(1904~1982)의 창작집 「황혼에 서서」(부안문화원)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황혼에 서서','구두장이','인도주의자와 자전거' 등 13편의 소설과 '탈향기','해는 간다','낙엽을 붙들고' 등 수필 및 평론, '암야','희생자' 등 2편의 희곡을 포함해 총 33편이 수록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는 '백주 김태수론'을 통해 "이젠 김태주 선생을 한국 현대문학사에 불러들여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려는 도전정신과 일제의 탄압에 의한 좌절을 재조명하고 선구자적인 면모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어 "그는 한국 현대문학의 초창기 작가로 1920년대 신경향파 관념주의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로 변화시키고, 교육에 의해 나라를 새로이 건설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목적문학을 제시한 사회주의자였다"고도 평가했다. 사회주의는 일제에 저항하는 또 다른 도구였다는 것이다.

 

오 교수에 따르면 김태수는 호남에서 맨 처음 소설을 쓴 작가다. 그는 21세 때 1924년 「개벽」에 희곡 '희생자'로 입선한 뒤 「동아일보」에 단편소설'처녀시대'를 싣고, 그 해 11월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소설 '과부'로 등단했다. 이광수는 그의 작품을 두고 천재적 솜씨가 보인다며 자연스럽고 서정적인 글이었다고 평가했다.

 

김태수는 교육사업가로서 활발한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 일제에 저항하기도 했다. 1930년대 호남 서부 지방에서 활발한 운수사업을 벌이고, 8·15 해방 후 이영일 선생과 재단법인 낭주학회를 구성해 부안중·부안여중 설립에 기초를 닦았을 만큼 교육사업가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문학을 대신해 선택한 삶이었다.

 

김원철 원장은 "그가 작고한 지 30년이 흘러가는 오늘, 20대 초반에 쓴 창작품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편 발굴 돼 감히 한 권의 창작집으로 엮어볼 만한 분량이 수집됐다"며 "그의 작품을 문학사적 측면에서 체계있게 정리해준 오하근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 평생 솔씨를 퍼뜨려 넓고 푸른 큰 솔밭을 이루고 싶어했다는 그의 푸르고 유장한 뜻이 이 책을 통해 오랫동안 간직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