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데 묶여 '한국의 역사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자랑거리가 하나 더 생긴것이다.유네스코(UNESCO)는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Organization의 약자이다.
유네스코의 설립목적은 인류 평화이고 1945년에 설립된 국제 기구로써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고 우리나라도 1950년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한국 문화재중에서 유네스코 지정 유형 문화제에 등재된것이 7개이고 기록 문화재로 등재된것이 4개이다.
등재된 유형문화재는 석굴암과 불국사, 합천 해인사에 있는 13세기 고려때 만든 팔만 대장경, 조선 왕조 역대의 왕들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宗廟),조선 22대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 하며 만들었다는 수원화성, 조선 태종때 처음 만들었다는 창덕궁,경주의 석굴암과 불국사,경주 역사 유적지구, 선사시대의 무덤이라는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지구이다.
특히 고인돌의 경우 전국에 3만개가 산재해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로 등재된것은 '직지 심채 요절' '훈민정음, '조선왕조 실록' 승정원 일기'이다. 조선왕조 실록이 지금까지 보존케 된것은 이곳 호남 선비들의 역할이 컸음도 기억해 둘일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은 15세기 풍산 류씨 집안이 이주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조 최고 명재상이라는 칭호를 받는 서애(西厓) 유성룡이다. 유성룡의 종택(宗宅)이 '충효당(忠孝堂)'이라는 이름으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자리잡고 있다 한다. 임진왜란이라는 7년의 국난(國難)을 어렵게 치루어낸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과도 밀접한 인연을 가졌다. 이순신 장군의 그릇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했던 사람이 바로 유성룡이었다.
유성룡은 무과 과거에 합격하고도 직책다운 직책을 갖지못한 이순신을 조산 만호에 천거했고 파직당한 이순신을 다시 발탁하여 정읍 현감으로 앉힌후 다시 전라 좌수사로 승진시키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성룡이 당파의 와중에서 파직됐을때 이순신 장군의 실망은 대단했었다고 한다. 하화마을 하면 유성룡이 쉽게 떠오른다.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