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모스크바에서는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팬들이 시내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 최 추모의 벽'에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추모객들은 최의 사진이 놓여 있는 추모의 벽에 꽃다발을 바치고 촛불을 밝힌 뒤 '그루파 크로피(혈액형)' 등 그의 인기곡을 함께 불렀다. 이들은 "우리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추모객은 리아노보스티와의 인터뷰에서 "최는 우리의 전부다. 천재 가수인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트 거리 인근의 꽃집들은 최의 팬들이 장미와 카네이션 등을 앞다투어 사가면서 꽃이 바닥날 정도였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최가 태어나 활동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그의 무덤이 있는 보고슬로프스키 묘지에는 수백 명의 추모객이 몰려와 꽃을 바치고 그의 노래를 불렀다.
최가 한때 화부로 일했던 시내 공장에도 추모객이 몰려들었으며 밤에는 시내 미하일로프스키 성에서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196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는 19세때 록 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약 9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러시아 특유의 선율에 소련의 압제적 분위기에 맞서는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그의 노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최는 소련 록의 전설로 떠올랐다.
인기 절정에 있던 그는 1990년 순회공연차 들른 라트비아 리가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공식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으로 발표됐으나 일부에선 타살설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