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백일장이 목적은 아니었다. 주로 시설에서만 생활하는 회원들에게 나들이를 시켜주고 싶어서였다. 1박2일, 거기다 숙소가 호텔이라지 않는가 말이다. 기대했던 것처럼 행사 당일 버스에 오른 회원들은 한껏 들떴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 또한 내 속셈이 빗나가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관광과 교육으로 짜인 첫날 일정을 마치고 백일장이 열리는 둘째 날을 맞았다. 예정시간이 지났건만 행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늘에 앉아 있는 회원들을 보다, 지금 이 시간이 회원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더불어 좀 더 승부욕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백일장에서 한번쯤 상 타는 기쁨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 의도를 갖고 처음으로 '포섭'한 이가 윤섭(가명)씨였다.
"윤섭씨! 우리 계약 하나 합시다."
"무슨 계약요?"
"내가 평소에 시 좀 쓰거든요. 대신 써 줄 테니까 1등하면 상금으로 과자파티 한번 합시다. 어때요?"
"그거 불법 아녀요?"
"물론 불법이죠. 근데 우리가 1등하면 좋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해요. 나 믿고…."
계약은 쉽게 이뤄졌지만 회원들이 마실 물을 사오는 동안 그것은 파기되고 말았다.
"윤섭씨! 원고지 주세요."
"전 벌써 다 썼어요. 다른 사람들 거 쓰세요."
"계약 했잖아요. 내가 써 줄 테니까 그걸로 냅시다."
"국장님, 전 그냥 제가 쓴 걸로 낼게요."
우리 회원이 1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눈멀어 몇 번이나 더 계약을 강조하며 대신 써주겠다고 억지를 부렸지만, 윤섭씨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윤섭씨가 쓴 시를 읽어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다른 회원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2명과 계약이 이뤄졌고, 30분도 채 안돼 2편의 시를 썼다.
시상식은 정신장애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풍물공연에 이어 시작됐다. 우리 회원들 중 3명이 입상했다. 이제 남은 것은 1등과 2등. 내가 써 준 시가 적어도 2등은 될거라 확신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2등 5명 중 내가 대신 시를 써준 2명의 이름이 불려졌다. '그러면 그렇지' 하며 '자뻑'에 빠진 순간 내 귀를 의심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1등 당선작에 윤섭씨 작품이 뽑힌 것이다. 시상 후, 윤섭씨는 자신의 시 '봄'을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며/River Hill 창밖을 내려다 본다/멀리 버스들이 무심히 오고가는데/군산에서의 추억이 머리를 스친다/어제는 채만식 선생에 대해 들었다/무던히도 가난하고 아팠구나/창밖 멀리 금강이 흐릿한데/호텔 뜰의 늦은 철쭉이 유난히 붉다
1등 상금은 20만원이나 되었다. 윤섭씨가 20만원을 다 내겠다는 것을 말려 10만원만 내게 하고, 2등 상금을 보태 회식을 했다. 그 후 몇 번이나 윤섭씨에게 시를 써보라고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웃기만 했다. 지금, 윤섭씨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평상에 앉아 동료들과 카츄사 시절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 신성호 사회복지사(임실 사화복귀시설 '동행')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