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를 위해 한국에 온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뮐터(57).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족 출신으로 독재정권에서 탄압받은 경험을 토대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지난 16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서 "사회 고발이나 규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와의 의사소통이 문학"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됐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를 침묵으로 지켜보았던 시골 마을의 강압적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다.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젊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모임 '악티온스그루페 바나트'에 유일한 여성 멤버로 참여했던 그는 1982년 루마니아 정부의 강도 높은 검열을 거친 작품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남편이자 동료 작가였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했고, 2009년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려냈다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방한에 맞춰 국내에서는 그의 소설 「마음짐승」(문학동네)과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문학동네)가 잇따라 출간됐다.
「마음짐승」은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실존적이며 일상적인 억압의 풍경을 시적이고 치밀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차우셰스쿠 지배하의 루마니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이 고향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는 특히 헤르타 뮐러의 개인사가 많이 반영됐다. '마음짐승'이란 제목 역시 작가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자장가에서 착안한 것.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불안해 하는 자아의 그림자이자 상처 입고 그늘진 초상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1998년 국제 임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 당시 「마음짐승」이 차우셰스쿠 독재치하에서 세상을 떠난 두 친구를 위해 쓴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헤르타 뮐러가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기 1년 전인 1986년 발표한 작품으로, 당시 독재정권의 공포에 시달리며 서구세계로의 이주를 기다리던 독일 소수민들의 내면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주를 원하는 독일 소수민들에게 돈을 받고도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루마니아 정부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허가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독일 소수민들. 그는 도덕과 정의 대신 탐욕과 불법이 판을 치는 인간 세상을 촘촘하면서도 특유의 서늘한 문장으로 그려냈다.
소설 제목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루마니아 속담. 날개가 퇴화한 꿩은 위기에서 쉽게 먹이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독재치하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권력의 횡포 앞에서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본성을 동시에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