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 장인 팔봉선생이 특수한 비법으로 만든 빵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덕택에 평범해 보이기만 하는 '봉빵'에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생긴 것은 여느 단팥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무엇이 그리 자랑할 만하더냐. 호기심이 자존심을 눌렀다. 손님 앞에서 국밥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례라는 자존심을 잊고 봉빵 하나를 꺼나 덥석 베어 물었다.
오호라~ 막걸리에 발효를 했다더니 정말 향긋한 풍미가 나고 팥앙금도 쓰지도 달지도 않게 혀에 '착' 감겼다. 이번에 고운 님 눈 코 입 하나 하나 음미하듯이 생김새를 뜯어보며 맛을 즐긴다. 다시 보아도 생긴 것은 장삼이사 닽팥빵인데 향과 맛이 다르다. 이쯤 되면 빵집에서 가장 저렴하고 평범해서 허기나 달래는데 만만하다는 평이 쑥 들어가리라. 만족스럽게 봉빵 하나를 날름 해치우고 남은 빵을 이모들에게 전달하려는데 이제야 빵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유명 제빵 업체의 이름이다. 드라마 속 제빵 장인은 제빵업계의 상업화에는 고개를 돌리고 빵을 통해 인생의 도를 닦으며 시골빵집을 운영해나가고 있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제빵 장인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제빵업체의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빵 봉지를 치울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지지하지 않는다고 왜곡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탁구빵'이라는 설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모들은 너도나도 '김탁구빵'을 먹어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역시 김탁구빵"이라느니 "보리밥빵도 먹고 싶다"느니 "그냥 단팥빵 같다"느니 의견이 제각각이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모, 김탁구빵 더 사올까요? 모자라지 않아요?" 빵의 전체 양은 충분했지만 '김탁구빵'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궁금한 여러 입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좀 더 먹고 싶게 만드는가, 아니면 맛을 봤으며 됐다는 정도에 그치는가. 물론 가게 주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한국인 특유의 체면을 감안한 답변을 기다렸다. "그냥 단팥빵 같다"던 이모가 대답한다.
"있으면 먹지만 일부러 사올 것까지야."
체면 때문에 사오라고는 못하겠지만 있으면 더 먹겠다는 답변은 '김탁구빵'의 승리를 외치고 있었다. 누가 공짜로 주면 모를까 같은 돈 내고 먹기에는 한 끼 가정식 백반이나 콩나물 국방이 월등하다는 뼛 속 깊은 한국식 입맛을 가진 이모들도 '김탁구빵'의 스토리텔링에 호기심을 증폭시킨 것이다.
기실 막걸리로 발효시킨 빵은 어릴 적 친숙한 음식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방앗간을 하던 외가에서는 종종 논일에 바쁜 이웃들을 위해 새참을 내곤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막걸리 빵이었다. 자주 베풀어지는 호의에 이웃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으면 외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막걸리를 밀가루 부대에 쏟았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서 푸짐한 막걸리 빵을 만들곤 했다. 잠시 머릿속을 비집고 나온 추억을 접어두고, 김탁구빵의 성공 비결은 바로 드라마로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에 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드라마가 끝난 후 김탁구빵의 인기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 빵을 출시한 현실 속 제빵업체는 삶과 상업의 도를 고루 지켜가는 성실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만큼은 공고히 누릴 듯하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추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인의 스토리텔링이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전북의 음식은 과연 맛이 있지만, 그것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부족한 2%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덧붙임 하나. 몇 년 전 드라마 '단팥빵'을 전주 한옥마을에서 촬영했을 때 우리 지역 제빵업체들은 왜 '특별한 닽팥빵'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 유대성(왱이콩나물국밥전문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