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그룹 UV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의 틀을 갖췄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UV에 대한 설명부터 이들의 발언, 주변 사람들의 평가까지 그야말로 거짓말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러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8일 마지막 9부까지 평균 시청률은 1%가 채 안됐지만 매 방송내용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고 참신함을 인정받아 올해 상반기 엠넷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 알고 듣는 '뻔뻔한 거짓말'의 재미 = 'UV 신드롬'의 재미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진짜처럼 밀어붙이는 뻔뻔함에 있다. 'UV 신드롬'은 실존 그룹 UV를 거짓말로 포장하는 데서 출발한다.
주인공 UV는 개그맨 유세윤이 친구 뮤지와 결성한 그룹으로 지난 4월 음반시장에 데뷔한 후 각종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갓 데뷔한 UV가 숨어있는 음악계의 거장으로 많은 가수가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장을 증명하기에 앞서 '거장' UV의 행보를 따라가며 거침없이 거짓말을 이어 나간다.
제작진은 베테랑 댄스가수 구준엽이 이들로부터 행사 비법을 전수 받고 인기가수 태양이 UV를 견제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자신들의 거짓말을 당연한 사실로 포장한다.
유세윤은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으로 '나오는 음악이 좋아 홈쇼핑 채널을 본다' '스타가 팬을 뽑을 수도 있다' 등 기상천외한 발언을 쏟아내며 웃음에 일조했다.
박준수 PD는 9일 "진작 거짓말하는 거 확실히 하자고 생각했다"며 "우리 프로그램은 결국 농담 그 자체"라고 말했다.
'UV 신드롬'의 웃음은 단순한 거짓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음악과 방송 전반의 행태를 교묘하게 비꼬며 통쾌함도 동시에 선사했다.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곳이 없어 홈쇼핑까지 나가고 돈벌이를 위한 음악은 하지 않는다면서 도 기사식당까지 가서 행사를 하는 모습 등은 가수들이 제대로 설 무대가 드물고 돈벌이에 급급한 우리 가요계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평론가 김교석씨는 "그냥 웃고 마는 내용에 그쳤으면 재미가 덜했을 텐데 매 에피소드마다 표절, 음악의 상업화, 사전 검열 등 현실적인 이슈를 다뤄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했다는 데 큰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 새로운 장르로 신선함 선사 = "틀에 박힌 음반시장에 신선한 린치를 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UV에 대한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평가는 'UV 신드롬' 프로그램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비슷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예능계에서 'UV 신드롬'은 페이크(가짜) 다큐라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며 여타 프로그램과 차별화했다. 거짓을 토대로 한 페이크 다큐는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요즘 예능 트랜드의 대척점에 서 있다.
박준수 PD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피터 잭슨의 페이크 다큐 '포가튼 실버'(1996)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피터 잭슨은 이 다큐에서 샘 닐 같은 유명인사를 등장시키고 조작된 자료를 제시하며 콜린 매킨지라는 무명의 뉴질랜드인이 영화사의 모든 혁명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은 재미를 위해 만든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박 PD도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도 결국 재미를 위한 것"이라며 "모두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재미를 추구하지만 페이크 다큐는 거짓말을 무궁무진하게 재미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UV의 행위는 진짜지만 파생되는 결과와 영향은 모두 거짓"이라며 "그렇지만 프로그램 자체를 리얼리티로 포장했기 때문에 거짓말이 더 잘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제작진은 페이크 다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UV의 불꽃 같은 음악인생을 조명한다'는 취지를 내세우며 UV를 아티스트로 대하는 접근법을 썼다. 개그맨 유세윤의 모습은 철저히 배제했고 UV의 음악 세계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았다.
박 PD는 "1990년대 음악을 재해석한 UV의 음악세계를 존중해 아티스트로서 UV에 진지하게 접근했다"며 "실상 우리 프로그램의 재미는 모두 음악으로 귀결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거짓말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말 엠넷 시상식 무대에서 촬영된 UV의 은퇴 에피소드는 실제 UV가 음악활동을 접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김교석씨는 "대중들이 익숙하지 않은 형식을 시도하다 보니 장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혀 웃기지 않은 프로그램이 된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