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목표가 6강 진입이라는 유재학 감독의 엄살 섞인 발언도 이해가 될 만큼 모비스 선수들의 면면은 다른 팀에 비해 보잘 것 없다.
스타 플레이어 양동근(29)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이름이 알려진 선수가 드물다.
시즌 내내 긴 수건을 두른 채 벤치에만 앉아있다 보상선수로 이름을 올린 선수에서, 대학 내내 '잘 나가는' 선후배의 등쌀에 밀려 코트에 발 올려놓기 힘들었던 선수까지 맘고생 지독하게 한 얼굴 투성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올 시즌 희망이 볕이 들었다.
허약한 엔트리 사정으로 "올 시즌 베스트 5는 없다"는 코치진의 전략에 따라 만년 식스맨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이들에겐 패자부활전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삼성에서 벤치만 지키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에 모비스에 새 둥지를 튼 박종천(31)은 지난 시즌 모비스의 슈터로 거듭나며 성공한 식스맨으로 우뚝 섰다.
기량발전상과 식스맨 상을 동시에 석권하며 팀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은 박종천은 팀과 연봉 1억4천만 원에 5년 계약을 맺으며 '칠전팔기' 농구 인생을 열었다.
박종천은 "삼성에서 은퇴를 생각했었다. 모비스 못 왔으면 아마 퇴출당했을지도 모른다"며 "정말 지난해는 인생 역전의 해였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농구를 더 할 수 있게 돼 기쁘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보다 꾸준하게 열심히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15일(한국시간)에 치러진 미국연합팀과 2차 평가전에서 박종천은 어느 때보다 매서운 눈매로 코트를 활보하며 팀의 2점차 승리를 이끌어 올 시즌 확실한 재기의 신호탄을 알렸다.
팀에 합류한 지 3개월째인 노경석(27)에게 박종천의 성공신화는 남다르다.
노경석은 SK와 FA계약을 체결한 김효범(27)의 보상선수로 지난 6월 모비스에 합류해 누구보다 가슴에 난 생채기가 아물지 않은 상태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노경석은 "정말 치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근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라며 순한 외모답지 않게 마음 한구석에 품은 한을 그대로 내보였다.
"예전에 SK에 있을 때에도 좋은 기회가 있었었요. 근데 낚아채지 못했었죠. 정말 이번엔 잘 해내고 싶습니다. 코치진 기대에 부응할 겁니다. 꼭 그럴 겁니다"
마냥 착해 보이는 외모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코치진으로부터 '겁쟁이'라는 핀잔을 듣는 데 대해 노경석은 "오해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누구보다 더 골 욕심도 많이 부리고 '깡'도 보여서 이젠 그런 이미지를 없앨 겁니다"라고 말한다.
올 시즌 신인 지명 1라운드 9순위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비운의 센터' 유종현(24) 또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렸지만 중앙대에 진학해선 현재 태극마크를 단 선배 함지훈(26)과 후배 오세근(23)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구단 관계자는 "대학 때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해 기량 발전이 늦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막상 유종현의 생각은 달랐다.
"한 번도 세근이나 지훈이 형한테 치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대학 시절 제가 맡은 역할이 따로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김주성 같은 센터가 되고 싶다는 유종현은 "프로 신인인 만큼 올 한해는 일단 근성 있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요. 그다음에 제 욕심을 부리고 싶습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아직 카메라 플래시가 낯설기만 한 이들에게 올 시즌 '무한경쟁' 엔트리는 각자 농구 인생의 중요한 고비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전원 식스맨 체제로 시즌을 치러야 하는 모비스가 말그대로 '외인구단'을 이끌어 챔피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이들의 활약 여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