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은 조선사회를 이끈 지배층이었다. 그러나 평소 우리가 접하는 양반은 사극 드라마 속 음풍농월을 하는 한량이나 정쟁에 몰두하는 정치적 실세일 뿐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묻혀있었다.
전주 출신으로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한 허인욱씨(38)의 「옛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돌베개)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조선 양반의 일대기를 옛그림과 옛글로 재구성한 책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조선 양반의 일생'이란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며 조선사회를 유지했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양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닫고 양반의 일생을 재구성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인 양반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 결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의 피해를 감내하는 대인이 아닌 작은 이익을 얻으려고 타인을 등지고 슬플 때 눈물 흘리는 지극히 평범한 소인의 일상을 말하기로 했다.
저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인 '평생도'를 주축으로 삼고, 양반의 생활사와 관련된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평생도'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기념이 될 만한 경사스러운 일들을 골라 그린 풍속화. 돌잔치, 혼인식, 회혼례 등 평생 의례 부문과 관직에 나아간 양반이 거치게 되는 여러 벼슬살이 장면을 담고 있다. 벼슬을 지낸 인물의 공적을 기리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제작된 만큼 조선시대 양반의 인생관과 출세관이 잘 표현돼 있다.
'돌잔치-1장 조선의 할아버지, 육아일기를 쓰다'에서는 이문건이 손자를 키운 과정을 소상하게 적은 책 「양아록」을 비롯한 육아 관련 옛글과 돌잔치 모습을 담은 '모당 홍이상 평생도' 중 '초도호연'을 통해 양반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를 설명한다. '교육-2장 책벌레가 되어야 한다'에는 작자 미상의 '서당도'가 등장한다. '혼례-3장 시집가고 장가오는 게 이리 힘들어서야'는 '모당 홍이상 평생도'의 '혼인식'과 '단원풍속화첩' 중 '신행'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림을 통해 당시 혼례식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과거시험-4장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에서는 무과 시험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전통무예에도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경기감영도'나 '북새선은도' 등을 통해 무과시험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관직의 길-5장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향하여'에는 '평생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직과 관련된 그림들을 통해 승진과 출세를 꿈꾸었던 조선시대 양반을 만날 수 있다. '회갑-6장 60이라는 특별한 축하'는 '평생도' 중 '회갑'으로, '상례와 제례-7장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평생도'에서 상례를 따로 다루고 있지 않아 구한말 3대 화가 중 한 사람인 김준근이 그린 상례 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