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7·8월의 일이다. 이상(1910.9.23~1937.4.17)의 「오감도」 연작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자, '무슨 미친 수작이냐', '당장 신문사에 가서 그 놈의 오감도 원고 뭉치를 불살라야 해!' '이상이란 자를 죽여야 해!' 등등 독자의 맹렬한 비난으로 인하여 신문사는 그 연재를 중단해야만 했다.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새삼스럽게 상기된 유명한 '오감도 사건'이다.
오늘날 이상은 그를 모델로 삼은 여러 편의 장편 소설, 연극, 심지어 영화가 나올만큼 인기가 높다. 실상 그의 작품은 대개가 극히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당대의 희한한 문제적 작가였다. 그의 담대한 실험적 기법도 문제성이 많았지만, 그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라는 난세를 그답게 저항적으로 반영한 때문이다.
작가의 세계가 그의 '얼굴'이라면 이상은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 얼굴은 「오감도」연작(1934)이 대표적으로 속해 있는 작품들인데,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전위(前衛) 예술이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전위예술(아방가르드예술)의 국제적 운동이 유럽과 미국 등에서 볼 수 있었지만, 문화적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던 조선에서는 이상이 혼자 그 운동을 도맡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초현실주의적 작품의 세계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여서 그 작중사건과 표현은 자주 황당한 것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미친 수작'이라는 독자들의 비난을 뒤집어 써야 했다.
그러나 이상의 문학은 또 하나의 '얼굴'을 숨기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동양지향성이었다. 「오감도」연작에도 반영된 난세적 혼란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진정제는 그의 경우 주로 노장(老莊) 사상이었다. 가령 「가외가전(街外街傳)」이라는 문명비평적인 시에는 화자가 소음과 폭력의 도시에서 높은 '육교(陸橋)'에 서서 '편안한 대륙을 [유연하게]내려다 본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편안한 대륙'은 노장사상의 고향을 비유한 것이다. 또한 단편소설 「종생기」에 '고고(枯稿)'한 삶을 고집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고고'란 세속적 욕망이 없는 '고목(枯木)'같은 정신상태의 뜻으로서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李箱의 동양지향성은 그가 서구적인 이성(理性)중심주의자가 아니었음을 입증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서 서구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의 변증법적 대립에서 동양적인 것을 선호(選好) 했다는 점이다.
세번째 '얼굴'은 정치적 참여 작가로서의 이상이다. 그는 여러 편의 작품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했다. 「날개」에 나오는 '경성역(京城驛)'으로 들어오는 기차의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나 요란한 '정오(正午)사이렌 소리'는 일제의 군국주의와 식민지 공포정치의 은유였고, 「오감도 시(詩) 제15호」에 나오는 '군화'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선 안될 것은 이런 세가지 '얼굴'을 가진 이상의 작품들이 대체로 독자를 낭패스럽게 할 정도로 어렵거나 황당할지라도 오늘날 대단한 인기를 누리도록 만든 가장 중요한 비결이 그의 놀이의 정신이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와 역설과 패러디 등 언어 유희가 번번이 독자에게 기발한 개안(開眼)의 충격과 함께 그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한 일제 강점기에 이상같은 출중한 유머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겨레의 축복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이를 통찰한 문학평론가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