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행동할 수 있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생활이 돌아왔다. 모처럼만에 긴 연휴 속에서 마음껏 휴식을 즐긴 사람도 있을 거고 여전히 바쁜 나날 속에서 잠깐의 여유만을 찾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휴식은 일상의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데 큰 활력소가 된다.
이번 나의 연휴계획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손에서 책을 놓은지 오래되어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굳으면 사고가 마비되고 사고가 마비되어 가다 보면 의식이 죽는다. 내 의식을 내가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좀 읽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건 계획일 뿐 해야 하는 일더미 속에서 결국 연휴기간 내내 책 한권을 읽지 못했다.
그렇게 여느 때와 별 다를게 없는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번뜩 깨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쉬려고 인터넷 창에서 웹툰을 찾았다. 좋아하는 웹툰 작가가 연재를 시작했기에 첫 회부터 천천히 감상했다. 웹툰 내용은 2012년 새해 첫날 세상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번 회는 남자주인공이 군부대가 나누어 주는 배식을 받는 내용이었다. 배식을 받기 위해서는 감염자는 정확한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언가 정확한 말을 해야 한다는 설정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로 내가 감염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 라고….
대사를 읽는 순간 울어버렸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평소 이 웹툰 작가가 그려온 만화들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이 말에 의미를 붙여서 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말은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벌어진 후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구호라는 의미를 말이다. 이 구호를 아는 나는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웹툰 작가의 대사가 그냥 넘겨지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험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부터 전주대학교에서 수업을 맡아 강의를 나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수업 중 "매체언어"라는 수업이 있는데 이 수업시간에 꼭 말로 표현하지 않고 각종 매체들로 그 상징하는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하고자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같이 감상한 적이 있다.
우리가 감상한 내용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편이었는데, 아이들은 여기서 많은 의미들을 찾아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찾아가는 파티장소는 4대강 오염이 가장 심한 곳으로 현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한다는 내용, 파티장소를 찾으러 가기 전에 두바이 식당에 가서 너무 많은 음식을 주문하는 장면은 두바이가 무분별한 건설로 국가위기에 맞은 것처럼 우리도 너무 많은 공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을 비판했다는 설명,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할 경우 잡혀가는 설정에서는 현 정부의 언론탄압을 비꼬았다는 추측까지, 아이들은 많은 의미를 찾아냈다.
물론 이것들은 과대추측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많이 방영했다는 사실을 알고 또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 그냥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니깐.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 후에는 느끼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끼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행동하게 된다. 지금 우리 20대 젊음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더라도 많이 알고, 보고, 느끼고 그리고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
/ 임숙정(전주대 고전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