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어요?"
"아직요. 도대체 어디에다 숨긴 거지?"
숨겼을만한 곳을 다 뒤져보았지만 술병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숨기려는 자와 찾으려는 자의 숨바꼭질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중에는 알코올증후군 환자들이 많다. 가족들에 의해 입원을 한 환자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죽을 것만 같아요. 나 좀 살려 줘요."
"무슨 짓이든 할테니 이놈의 술만 좀 끊게 해 주세요, 선생님."
비장한 각오로 찾아오지만 그들의 결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2~3일이 지나면 외출 허락을 해달라며 찾아온다. 사유도 가지가지다. 은행에 볼 일이 있다거나, 급하게 떼야하는 서류가 있다거나, 집에 일이 생겼다거나…. 하지만 목적은 하나다. 바로 술이다. 그걸 모르지 않지만 너무도 완강한 환자들의 경우 어쩔 수 없다. 외출 허락을 해주고 만다. 그들이 병원으로 돌아오는 모습 또한 우리의 예상을 비켜가지 않는다. 열에 일곱은 만취한 상태다.
그렇게 며칠 지나면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낸다. 직원들 사이에서 007작전이라 불리는 술 반입이 그것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동료 환자, 병문안 오는 지인, 심부름센터 직원, 퀵서비스 배달원에게 부탁해 음료수병에 든 내용물을 버리고 거기에 술을 담아 오게 한다. 음식 배달 서비스를 통하기도 하는데, 목적은 음식이 아니라 술이다.
직원과 환자의 숨바꼭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먹이려는 자와 먹지 않으려는 자의 숨바꼭질이다. 대개 알코올증후군 환자들에게는 뇌세포 파괴를 지연시키는 동시에 뇌세포를 재생시켜주는 약과 알코올 섭취 욕구를 억제시키는 약이 처방된다.
그런데 몇몇 환자들의 경우 이 약 때문에 술이 입에 받질 않는다며 약을 이불 밑에 숨기거나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곤 한다. 약을 삼킬 때까지 지켜 서 있어보지만, 약을 먹을 것처럼 입에 넣어 혀 밑에 숨겨뒀다가 뱉어버리는 환자도 있다. 참으로 그의 'JQ(잔머리 지수)'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우리의 'JQ'도 그 못지않다. 약을 가루로 빻아 물에 타 마시도록 했으니….
술을 끊겠다고 찾아온 병원에서조차도 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고, 자신도 모르게 술을 먹게 된다고 하소연을 한다. 차라리 마약은 구하기라도 어렵지, 술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알코올중독 치료는 생각보다 어렵다.
설령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더라도 되돌아오는 환자들 또한 많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몇 달 전에 완치 판정을 받고, 직원들의 열화와 같은 축하 인사를 들으며 퇴원했던 한 여성이 되돌아왔다.
"미안해요. 안 마시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 조명란 간호사 (전주 김동인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