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터스 투 줄리엣(드라마, 로맨스/ 105분/ 12세 관람가)
시집가라는 주위의 외압에 선 보기를 몇 차례. 아직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선지 아니면 정말 제 짝이 나타나지 않아서인지 눈에 띄는 남자는 없고 먼저 시집간 언니들의 현실적인 신랑감' 강의뿐이다. 하지만 '능력' '집안' '학벌' 등 배우자 조건을 얘기하면서도 누구하나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이란 감정은 호르몬의 장난이고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이 이야기뿐인 것. '결혼'도 결국은 현실의 일부인지라 여러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다고 다독이고 잠깐 나쁜(?) 마음도 먹어 봤지만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을 보고 확실히 마음이 굳어 버렸다. 언젠가 변할 사랑이라지만 처음부터 없는 사랑보다는 낫지 않을까하는 믿음, 세월이 지난 후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말이다.
소피(아만다 시프리드)는 작가가 되길 지망하지만 정작 용기를 내지는 못하는 '뉴요커' 잡지사의 자료조사원이다. 그녀는 식당 개업을 앞둔 약혼자 빅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함께 결혼 전 이탈리아로 미리 허니문을 떠나게 되지만, 정작 빅토는 둘의 여행보다 식당에 필요한 재료를 찾아다니는 게 우선이다. 결국 둘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하고 소피는 홀로 찾은 줄리엣의 집에서 흥미로운 관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바로 세계 각지에서 온 여성들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을 편지에 써서 줄리엣의 담벼락에 붙여 놓는 것. 그리고 베로나시의 공무원들이 줄리엣의 대리인이 되어 이 편지들에 답장을 써주는 것이다. 다음날 다시 줄리엣의 집을 찾은 소피는 50년 전에 남겨진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클레어는 그 옛날 부모님의 반대가 두려워 로렌조(프랑코 네로)의 프러포즈를 거부하고 도망치는 이탈리아를 떠났던 것이다. 소피는 클레어의 편지에 줄리엣의 비서로써 답장을 하게 되고 이미 백발의 할머니가 된 클레어는 로렌조를 찾기 위해 50년이 지난 지금 손자인 찰리(크리스토퍼 이건)와 이탈리아를 찾는다. 이들과 로렌조 찾기에 동참한 소피. 그리고 다시 만난 클레어와 로렌조. 이들의 마지막 결말은 동화 같은 해피엔딩일까? 50년이 지나 클레어는 다시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 지방의 아름다운 배경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은 '레터스 투 줄리엣'은 처음부터 사랑에 올인 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야기의 태생부터가 '진실한 사랑'인 것은 물론이고 '서로의 얼굴에 아이스크림 뭍이기'나 '첫사랑이 말을 타고 나타나는' 같은 로맨틱한 장면까지 완벽하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머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왜 저런 사랑을 못 받을까' 같은 질투와 함께 가슴 한 곳이 먹먹하고 어쩐지 간지러운 묘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맘마미아'를 통해 유명해진 소피 역의 아만나 시프리드가 그 맑은 눈을 또랑또랑 뜨고선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 외치고 사랑 예찬을 끊임없이 해대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을 고백하기까지 50년을 기다린 클레어. 그 예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도 잘 됐다고도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그녀가 보낸 50년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했으니. 한 순간의 선택이 바꿔버린 그녀의 인생처럼 한 순간 세상살이에 휩싸여 당신의 진짜 사랑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면 굳이 50년을 기다려 고백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