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창조도시와 도시발전전략의 변화

원도연(전북발전연구원장)

지금은, 개념 자체를 많이 쓰지 않지만 '지역문화'라는 말은 80년대와 9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담론이다. 근대화 이후 갈수록 변방으로 전락하는 '서울 아닌 지역'의 활로를 찾고 지역의 삶의 질을 높혀보자는 희망과 운동을 표상한 말이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역문화라는 말보다는 '문화도시'라는 개념이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역문화가 지역에 숨어있는 문화역량을 발굴하고 문화예술인들을 결집한다는 의미를 더 크게 갖고 있었다면, 문화도시는 도시의 발전전략에 가까웠다. 많은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지역의 대표적인 발전전략으로 선택했다. 그 정책적 선택의 끝에 수많은 지역축제와 각종 문화기획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도시 전략들은 대체로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거나, 소리없이 사라져갔다. 그 문화도시의 전성기가 시들해지고 이어 최근 2-3년에는 창조지역이 도시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창조지역이란 무엇인가. 창조지역에 대한 유명한 이론가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결정적인 요인은 "그 회사가 오스틴에 있으니까요!" 였다. "왜 그 점이 좋은거죠"라고 나는 물었다. 그는 설명했다. 그곳에는 많은 젊은이들, 어마어마한 양의 일, 활발한 음악무대, 인종적·문화적 다양성, 굉장한 야외 오락시설, 멋진 밤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 그는 피츠버그의 하이테크 회사로부터 여러 좋은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도시에는 그가 매력을 느끼는 일상적 선택권, 문화적 다양성, 관대한 태도가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요약해 말했다. "제가 어떻게 여기에 적응하겠어요?…"

 

플로리다의 말을 정리하면 두 가지 문제가 핵심이 된다. 첫째는 신인류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높은 임금과 회사의 발전가능성만 가지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 그 도시에 무엇이 있는가, 그 도시에서 내가 어떤 삶을 누릴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도시공간의 문제다. 다양성과 즐거움, 지역문화가 살아 있는 공간이 미래의 공간이 된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90년대의 지역문화 담론이 지역의 문화를 진흥하고 그럼으로써 도시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운동이었다면, 지금의 창조지역은 이것을 사람과 공간의 문제로 바꿔서 이야기하고 있다. 문화도시와 창조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문화도시가 도시의 문화력을 높이는 것에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면, 창조도시는 도시 전반의 변화 즉 공간과 사람, 환경을 같이 변화시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

 

따라서 창조도시는 기존의 도시발전전략과는 전혀 다른 철학적 기초를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창조도시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자유, 다양성, 영감, 지속가능, 공동체, 창조성 등의 단어들이다. 보헤미안적 성향을 지닌 자유로운 영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그럼으로써 도시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창조도시 논의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평가받는 나라가 영국이다. 쉐필드, 게이츠헤드, 글래스고우 등이 대표적인 창조도시로 꼽힌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도심공간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여든 창의적인 인재들이 음반, IT, 영상, 전시컨벤션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형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또 성공적인 창의도시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특징은 공간의 재구성이다. 비싼 돈을 들여서 멋지고 높은 문화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공장이나 관청으로 쓰이던 낡은 건물들과 구도심을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에게 맡겨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런던의 테이트모던이나 게이츠헤드의 발틱센터, 가나자와의 시민예술촌 등이 대표적인 공간활용의 사례들이다.

 

결국 창조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전략을 어떻게 펼치느냐가 핵심이 된다. 지금 전북에서도 알게 모르게 창의도시의 열풍이 불고 있다. 진정한 창의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시전략이 나와야 한다. 전주의 구도심을 바라보는 시선과 전략을 변화시키는 것이 창의도시의 첫 번째 전략일 수도 있다.

 

 

원도연(전북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