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자이언트' 파란만장 여주인공 20년인생 연기(고양=연합뉴스) 윤고은 기자="이렇게 폭넓은 나이대를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는 처음이에요. 근 20년 인생을 표현해야 하니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SBS TV 대하드라마 '자이언트'에서 여주인공 황정연을 연기하고 있는 박진희(32)를 최근 경기 고양 탄현SBS제작센터에서 만났다.
지난 11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27.9%를 달성하며 월화극 시장의 맹주로 떠오른 '자이언트'는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강남의 땅 개발사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시청률이 잘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어요. 일단 배우들이 다음 회 대본을 궁금해하니까 드라마가 잘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궁금해하는데 시청자는 어떻겠어요.(웃음)"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뭐든지 용서되던 시절에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부딪힘'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황정연과 남자 주인공 이강모(이범수 분)의 인생은 극단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순간도 다리 뻗고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사실 20년 인생을 그리려고 하면 파란만장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새엄마 밑에서 '가시돋친 장미'로 자란 정연이 어렵게 차지한 만보건설 후계자자리를 빼앗기고 시장바닥으로 내쳐져 사채업자가 된 것은 그야말로 극에서 극을 오가죠. 사랑에 있어서도 강모를 불같이 사랑했다가 완전히 원수로 돌아서기도 하잖아요. 내가 어찌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반면에 그만큼 재미있게 연기하고 있습니다."경영권 다툼에서 만신창이가 된 후 사채시장에 흘러들어 '큰손'을 꿈꾸는 정연은 최근 납치, 감금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인생의 무게가 큰 그는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는 팔자다. 연기자로서도 다른 캐릭터와 비교해 에너지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촬영 중간중간 극에서 빠져나오는 순간들이 있지만,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늘 정연이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이 와도 대응할 수있거든요. 정연이가 안쓰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한때 재벌 딸로서 누릴 건 다 누렸잖아요? 강모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실어증까지 걸릴뻔한 순간은 불쌍했지만, 그 외에는 그 상황에 맞게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정연이처럼 저 역시 순발력있게 정연이의 감정을 흡수하며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박진희는 그간 주로 청순, 발랄, 코믹한 연기를 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자이언트'의 황정연이 된 그를 보고 '실제 박진희가 저럴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아닌게아니라 강단 있고 똑 부러진 황정연은 사회복지와 환경운동에 적극적인실제 박진희의 모습과 많이 오버랩된다.
"요즘 제가 똑 부러지고 바르게 살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유 아니에요. 제가 무슨 성자도 아니고…. 전 그저 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이고 그것을 인정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우유부단하고 치졸하기도 해요. 다만 일에서는 맺고 끊는게 확실하죠." 지난해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고 환경운동 관련 트위터와미니홈피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예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환경을 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의식주 문제가 해결돼야한다고 생각해서 복지에도 관심을 갖게됐다"며 "그러나 난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지 복지와 환경에 관한 일은 전문가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는 아닐지 몰라도 인기 배우의 말과 행동은 하나하나 사회적 관심을 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단적으로 그의 석사논문 '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는 큰 화제를 모으며 연기자의 복지와 인권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월평균 소득 100만 원 이상의 주연급 배우와 100만 원 미만의단역까지 연기자 26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연기자 중 40%가 가볍거나 심각한 임상적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의 가장 주된 원인은 직무 스트레스와 생활 스트레스로지속적인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는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제가 지금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논문이 이슈가 되면서 학계와 연관돼 여러 인터뷰를 하는 등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내 위치에서 어떻게 조금 더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늘 하고 있습니다."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서 극중 '큰손'을 꿈꾸는 그의 경제관념은 어떤지 물었다.
"전혀 없어요. 재테크 잘하는 사람 너무 부럽고 그런 방면에 '촉'이 발달한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한때 저도 관심을 가져보려고 노력했으나 머리만 아프고제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하며 돈을 불리느니 고민하지 않고 편하게 살려고요. 남은 방법은 한가지, 재테크 잘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거예요.(웃음)"1998년 영화 '여고괴담'으로 데뷔한 후 12년이 흘렀다. 한때는 '답이 안 나오는' 고민에 빠져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고민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편한 건 아니에요. 늘 감정적으로 동요를 일으키는 배우가 어찌 편할수 있겠어요. 그러려고 노력할 뿐이죠. 요즘에는 내가 과연 캐릭터에 어디까지 몰입하나,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고는 해요. 몰입도가 커질수록 나 자신을 놓아버릴까 봐 두려운거죠. 그리고 혹시 내 한계를 알아버릴까봐 겁도 나고요."예전에 비해 한층 씩씩해지고 여유로워진 그는 "시간이 흐르면 변해야한다. 늘 한결같으면 문제 있다"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