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사업으로 전라북도는 전국에서 제일 넓은 면적의 갯벌을 잃었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갯벌은 2008년 말 기준 총 2,489.4㎢로 첫 조사가 이뤄진 1987년 이래 714.1㎢가 줄었다. 같은 기간 전라북도 갯벌은 321.6㎢에서 117.7㎢로 무려 63%나 감소했다고 한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굳이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동진·만경강 하구에서 얼마나 넓은 면적의 갯벌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 새만금 갯벌의 대표 조개 '백합'
새만금 갯벌에는 무수하게 많은 생명이 깃들어 있다. 그 중 백합, 우줄기, 계화도조개, 대맛조개, 가무락조개, 해방조개, 동죽, 대추귀고둥 등은 새만금 갯벌의 명물들이다. 이 명물들 중에 대표급은 역시 백합이다.
백합은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 일본 등지에 사는데 그 중에서도 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거전, 심포가 유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는 백합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의 이야기다.
백합은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역 갯벌을 선호하는데, 부안의 계화도와 김제의 거전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고,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하구역 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다.
백합이라는 이름은 껍데기의 크기가 100㎜ 정도로 큰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껍데기 표면의 무늬가 백이면 백, 각기 달라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가하면, 부안에서는 백합을'생합'이라고 부른다. 이는 백합이 다른 패류에 비해 오래 살기 때문에, 혹은 육질이 깨끗하고 신선해서 생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합은 아이들 주먹만한 중간 크기가 먹기에는 좋다. 탕으로, 죽으로, 구이로, 횟감으로, 찜으로 요리해 먹는데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백합에는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예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 사람들은 하루에 두 차례씩 어김없이 들고나는 갯벌에 나가 백합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질척이는 삶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네 삶을 지탱해 주고, 미각을 사로잡은 백합이 이 지역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길이 닿는 지대 어디쯤에 아직은 모진생명 붙들고 있는 백합들도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른다.
▲ 미국으로 이민 간 '계화도조개'
계화도조개는 이름 그대로 계화도에 흔한 조개다. 부안사람들은 바지락보다도 훨씬 작은 이 계화도조개를 '아사리'라고 부른다.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만해도 부안시장에 가면 가끔 계화도조개를 까서 파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는데 주로 젓갈을 담가 먹었다.
계화도조개라는 이름은 계화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계화도에서만 서식하는 생물인 줄 알고 학명을 그렇게 붙인 듯하다. 그런데 이 조개가 태평양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 물길이 막힐 것을 미리 알고 이민이라도 간 것일까? 사실인즉, 계화도조개 종패가 외항선박에 편승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건너갔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 생물들이 계화도조개를 당해내지 못하고 자기 영역을 시나브로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계화도조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986년 처음 발견되었고, 1년 사이에 북부로 확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만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고향에서는 멸문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가문을 번성시키고 있다고 하니 계화도조개 가문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고사위기에 놓인'대추귀고둥'
부안 해창과 김제 학당마을에 서식하는 대추귀고둥도 고사할 운명에 놓여있다.
대추귀고둥은 담수의 영향이 미치는 곳, 그것도 염분 농도가 낮은 강 하구의 만조선 위에서 서식하는 희귀종으로 강 하구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생물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만 사는 이 종은 1속1종인데다 환경파괴로 인해 개체수마저 크게 줄고 있어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하였다.
대추귀고둥의 크기는 높이 3.5cm, 지름 1.5cm 정도로 대추를 닮은 원추형이며 입구는 사람의 귀를 닮아 좁고 상하로 길며, 항문구 쪽은 좁고 앞쪽은 둥글고 넓다. 껍데기는 두껍고 갈색의 각피로 덮여 있어 벗겨지면 회색이 드러난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대추귀고둥이 물길이 막힌 지금도 살아 있을까?
2007년 8월12일과 17일 답사 때만해도 살아있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김제 학당 서식지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고 부안 해창의 경우에도 아직은 살아있는 몇몇 개체가 바다와 가까운 해창다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 김제의 학당이나 부안의 해창 대추귀고둥 서식지 주변환경은 몰라보게 변해 있다. 이 지역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해 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오동필 씨에 의하면 지난 봄 답사 때에도 이들의 생존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 바닷물길이 끊긴 후로 대추귀고둥 서식지 주변은 비교적 키가 낮은 칠면초, 나문재 등의 염생식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키가 크고 억센 갈대를 비롯하여 자귀풀, 사데풀, 명아주 등이 발 디딜 틈 없이 밀생해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추귀고둥이 서식하기란 좀처럼 어려워 보인다. 설령 아직은 생존해 있다하더라도 서식지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여겨진다.
▲ 새만금갯벌의 이름 없는 생명
또 있다. 이 생명체는 세상에 그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새만금에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동진강과 고부천이 만나는 지점인 동진강 하구(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일대)나 만경강 하구인 김제의 화포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미기록종이다.
지난 9월17일 부안의 이 미기록종 서식지를 찾아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생존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게 주변 환경이 변해 있었다. 대추귀고둥과 마찬가지로 설령 아직은 생존해 있다하더라도 서식지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갯벌 전문가들 사이에서 육상의 민달팽이를 닮은 이 생명체의 이름을 '순천바다민달팽이'라고 짓자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 없는 생명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순천만 말고도 새만금에도 엄연하게 생존하고 있으니 앞의 '순천'은 빼고 '바다민달팽이'라고 이름 지어도 무방할 것 같다.
2006년 3월9일 한·일공동 갯벌조사단은 환경부 기자실에서 일본 측 전문가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만금 갯벌에서 서식하는 신종과 미기록종을 발표했었는데 이 미기록종의 일본 이름은 '야베가와모치'라고 밝힌 바 있다.
생물 한 종이 지구상에서 멸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한다.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새만금갯벌에 깃든 뭇생명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또 이 갯벌에 기대어 살아 온 어민들도 삶터에서 내몰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새만금 생명들을 살리는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허철희(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
※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