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과다채무자인 이들에게 금융권 문턱은 너무 높다.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담보로 삼을 물건마저 없어 대출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하지만 이들 역시 생활인이고 의료비나 학자금, 주거비 등으로 다급한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다.
당장의 몇 백만 원이 필요하지만 번번이 은행 등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자구책을 마련했다.
전북실업자종합지원센터, 전주덕진지역자활센터, 사회적기업 사람과환경에서 일하는 저소득층 220여명이 자체적으로 주민금고를 만든 것이다.
올해 1월 세 기관이 협약식을 맺고 탄생시킨 나눔사랑연대금고(대표 육이수)는 현재 3700여만원의 종자돈을 가지고 서로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아는 저소득층의 삶에 작은 디딤돌이 되고 있다.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돈 3700만원. 하지만 '그림의 떡'인 수십억보다 더 소중한 이 돈은 모두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난 2003년부터 전주덕진지역자활센터 등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상조형태로 모은 돈 1000만원과 사회적기업 사람과환경이 매달 수익금 중 100만원을 보내고 있다. 또 나눔사랑연대금고 참여자들이 가입비 5000원과 매달 1000원씩 내는 회비가 모여 뭉칫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돈은 저소득층의 고달픈 삶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20명의 회원이 긴급 생계비로 3140만원을 대출받았다. 상환은 2% 이율로 매달 대출금의 10%를 갚는다. 200만원을 대출받으면 매달 20만원을 갚는 것으로, 이렇게 상환된 돈은 또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자활센터 소속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올초 갑작스레 오른 아파트 전세값 때문에 궁지에 몰렸다. 2300만원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상환 중인 마당에 갑자기 오른 전세값 300만원을 충당할 방법이 없던 것이다. 다행히 김씨는 나눔사랑연대금고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아 현재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의 사업 부도 뒤 보증빚 3000만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모씨도 급여 차압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200만원이 필요했다. 자활기관에서 일하며 급여는 80만원 상당. 새 출발을 위해 딸과 함께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는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용상태도 좋지 않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형편이 못됐다. 이씨 역시 나눔사랑연대금고의 지원을 받아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육이수 대표는 "너무 적은 돈이라 주민금고를 시작할 당시 망설임이 컸지만, 적은 돈이라도 돌고 돌아 어려운 이들의 삶에 윤활유가 되고 있다"며 "내년 1~2월이면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회원이 많을 것으로 보여 기금을 좀 더 늘려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29일 전주덕진지역자활센터 앞마당에서 '지역주민금고 기금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생긴 수익금은 고스란히 금고에 돌아가 당장의 몇 십, 몇 백만원이 급한 이웃들의 삶 앞에 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