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만에 문학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필가 김용옥씨(62)는 수척해져 있었다. 지난 여름 심하게 앓았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위안이 됐다. 그의 수필집 「찔레꽃 꽃그늘 속으로」(좋은 수필사)가 '제6회 에스쁘아 문학상'에 선정돼서다.
"'에스쁘아'라는 말 자체가 희망을 뜻하지만, 이 책이 몸 고생을 한 나에게 효자 노릇을 해줬어요. 내가 앞으로 10년간 더 글 쓸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에스쁘아 문학상'은 작고한 이청준의 소설 「우리들의 천국」의 주인공 조창원 시인이 상금을 내놓은 상이다. 그는 소록도에서 20년간 병원을 운영하면서 문인들을 위해 쾌척한 그의 뜻을 기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표제작 '찔레꽃 꽃그늘 속으로'는 익산 이리초교와 이리농고 사잇길에 있던 무성한 찔레숲에 관한 단상. 잘 익은 망고색의 오솔길은 아름다웠고, 슬펐다.
"너무 너무 속이 상할 때면 눈을 감고 그 때의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비몽사몽하듯 시간의 강을 건너죠. 침묵의 소리 끝에 보이는 건 찔레꽃이 날리는 화면이에요."
작품은 남다른 인연도 맺어줬다. 미국 수필 전공자 박양근 부산 부경대 교수가 이 작품을 접하고 연락을 해왔다. 찔레꽃 꽃그늘의 적막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토록 나눴다.
작품 '둘둘둘둘 구구구구'는 숫자'2'와'9'가 갖는 의미에 대한 소회다. '2'는 네가 있어야 사랑이 완성되는 생명체의 짝수, 인화의 수다. 그는 "2인칭 없는 세상은 살맛이 없다"고 했다. '9'는 추억의 숫자다. 1999년 9월 9일 밤 9시 9초는 소설가 김상휘, 대금산조 명인 강정렬, 김용옥 심옥남 이현애 시인, 수필가 김연주·나희주·임숙례·이숙자 시인이 취한 절대시간. 그는 "999년은 고려시대 동성애자 목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이를 위해 당시의 글을 찾아 읽기도 했다"고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약아진다는 거에요. 나쁘게 말하면 때가 탔다는 거죠. 정말 나이를 먹어도 순수해지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많이 잊고 사는 게 아쉽네요."
중앙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0년 「전북문학」에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를 발표한 뒤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전북문학상, 박태진 문학상, 백양촌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집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 「세상엔 용서해야 할 것이 많다」, 시선집 「그리운 상처」, 화시집 「빛·마하·생성」, 수필집 「생놀이」,「생각한잔 드시지요」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