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자연과 사고 - 장세균

우리 생활속에서 무엇을 잘 모르거나 알기는 알아도 애매할때는 자신이 없는 대답으로 "잘 모릅니다"라고 대꾸하기 마련이다. 또 지나가는 행인이 길을 물으면 가급적 단정적 표현을 피하고 "이 길로 가면 될 줄 압니다만…"하고 말한다. 길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나 사리를 잘 알아도 가급적 애매한 표현을 즐긴다.

 

그래서 우리말에 안개 전치사가 매우 발달해 있다. 예를 든다면 "잘은 모르지만…" "틀릴지 모르지만…" "아닌게 아니라…" "자신은 없습니다만…" "꼭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옳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등등 많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안개처럼 흐려버린다.

 

우리는 어떤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보다 애매하게 알고 있는 편이 심리적으로는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나 사막 문화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애매한 상황을 정신적으로 거부하는 잠재의식이 있다는데 사물이나 사리(事理)나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을 사막적 사고라고 한다. 그리고 반대로 애매한 부분을 남겨놓아 완충적 가치를 남겨 놓으려는 사고를 삼림적(森林的)사고라고 한다.

 

우리 한국인의 사고는 삼림적 사고요, 유럽인의 사고는 사막적 사고이다. 유럽의 자연환경이 사막은 아니지만 그들의 의식구조나 행동방식을 규제한 것이 바로 기독교요, 기독교는 유태교를 모태로 하고 있고 유태교는 순수한 사막적 사고와 행동의 기반이다. 그래서 유럽인의 의식구조는 사막적 사고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삼림은 나무가 우거지고 시야가 막히고 습기가 감돌며 안개가 그 형상을 흐려놓기도 한다. 그래서 선명한 형상을 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자연환경은 논리적이고 합리적 사고를 거부하기가 쉽게 만들지만 사막은 가린 것 없이 시야가 확 트였으며 넓고 거기에다 대기가 건조하여 안개나 이슬이 없다. 모든 것은 선명하게 시야에 노출되어 있다. 시간과 공간이 숨김없이 그대로 냉혹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명확한 사고를 하기가 쉬운 것이 사막적 사고이다.

 

그래서 서양인은 논리적 토론을 통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능숙하다. 그러나 삼림적 사고의 우리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