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존엄성과 엄정성을 엿보게 하는 고담(古談) 한 토막. 어느 세자사(世子師=왕자를 가르치는 스승)가 잘못을 저지른 왕자의 팔다리를 입으로 물어뜯었다. 체벌을 한 것이다. 당시 법도로는 왕자에게 매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로 비하한 뒤 물어뜯는 방식으로 체벌을 가했다. 보다 못한 왕비가 세자사의 의자 밑에 대못을 박아두었다. 퇴청 길에 의자에 앉다가 엉덩이에 대못이 박혀 피가 흘렀지만 세자사는 안색 하나 변치 않고 집에 돌아갔다. 아무리 왕자일 망정 잘못을 저지르면 체벌을 면할 수 없고, 왕비의 권위로도 훈장의 교권을 침해하지 않는 교육의 엄정성과 존엄성을 보여주는 예화다. 지금 같으면 법정으로 옮겨가고도 남았을 일이다.
체벌금지 논란이 분분하다. 지난 1일부터 서울 지역의 모든 초중고에서 체벌이 전면 금지됐다. 교육적 목적의 체벌까지도 해서는 안된다. 문제 학생이 발생할 경우 교사들은 교실 뒤에 서 있게 할 수 있고, 정도가 심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준다고 판단되면 성찰교실로 보내 전문상담원의 상담을 받게 해야 한다. 체벌한 교사는 징계에 처해진다. 전북교육청도 내년부터 체벌을 전면 금지할 예정이어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문제는 체벌만 없어지면 이상적인 학교가 될까 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처럼 획일적인 전면금지로는 부작용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은 체벌하면 신고를 하고, 교사는 학생이 말썽을 부리면 규정대로 처리하려 들 텐데 교육은 이런 게 아니지 않은가. 시정잡배들의 집단도 아닌 학교현장에서 매사를 '법 대로' 하려 든다면 끔찍한 일이다. 학생의 인권은 분명 중요하지만 의무를 다할 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또 잘못을 보고도 못본체하거나 생활지도를 포기하려는 교사도 늘고 대체처벌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교육현실이 자꾸 획일화되는 건 더 안타까운 일이다.
비교육적 체벌과 폭행을 없애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적 벌마저 없애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의견수렴과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체벌금지는 교육감 한 개인의 철학으로 실행시킬 문제는 아니다. 남이 장에 가니까 구럭지고 성급하게 따라 나설 사안도 아니다.
/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