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은 말한다. '지금 시대의 문학은 십 오년 후에 읽겠다. 십 오년 후에도 살아남은 작품은 그 때 가서 읽겠다는 얘기다.' 하루에도 수많은 소설책들이 쏟아지고 수많은 소설책들이 진열대의 위치를 바꿔간다. 이중에서 십 오년 후에도 살아남은 작품들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간장이 나쁘기 때문인 것 같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한 인간의 자책 어린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회부적응자다. 신경은 예민하고 과대망상증 환자이며, 욕구불만으로 가득 찼다. 또한 사회와 사람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 속으로 지하생활자가 되어본다. 사람들을 피해 집에서만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지구 종말의 시대까지 그 인간을 비판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본다.
인간은 지하생활자의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단지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의 존재이다.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 발전도 없다. 하지만 지하생활자는 이러한 모습까지 조소한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를 내세워 인간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지하생활자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인간을 비판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나에게 뼈아픈 충고였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니체는 스승이라고 불렀으나,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를 선구자로 추앙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지하생활자 같았다. 일생 동안 간질병으로 시달렸고, 사형 집행 직전에 풀려나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광적인 도박벽이 있었고, 끝없는 궁핍과 고난을 가지고 살아갔다. 이런 경험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무겁다. 그리고 격정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인간 내면을 읽는다. 함부로 말하는 듯 보여도 그의 문장에는 사회가 숨어 있고, 인간의 본질이 숨어 있다.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나는 남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인간이다.'
때론 이렇게 생각한다. 남과 어울릴 줄 모른다고 해서 인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들 속에 우리가 서 있을 때다. 오해와 갈등으로 얼룩진 사건들, 자기 안에 갇혀서 남에게 함부로 던지는 말들, 자기야 말로 우월하다고 믿는 행동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우리는 자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처럼 우리는 복잡하고 무겁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으며 나도 병적인 인간이 되어본다.
▲ 백상웅 시인은 2010년 전북일보 동화 부문 신춘문예로 등단, 대산대학문학상(2006), 창비신인 시인상(2008)을 수상한 바 있다. 전남 여수 출생인 그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