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이미 세계 에스페란토어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문법구조가 너무 다른 것이 문제다. 우리말에는 조사(助辭)가 있으나 영어에는 없다. 또 영어의 관계대명사가 우리말에는 없다. 거기다 어순(語順)조차도 우리말과 정반대이다. 아무튼 산에서 도(道)를 닦듯이 해야만 영어를 극복할 수 있다.
이제 영어를 모르고서는 취직하기도 어렵게 되어있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국가 운영을 위해 외국어 교육이 강력히 시행되었다. 특히 조선은 중국을 의식해야 했기 때문에 중국어의 중요성은 지금의 영어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깝게는 여진족이나 몽골 그리고 일본이 있기에 주변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역관(譯官)을 국가에서 양성했다.
조선시대 동북아의 공용어는 중국어였다. 그 당시 고위 공직자들도 중국말을 공부했다고 한다. '사역원'이란 바로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을 담당하는 국가부서였다. 조선 초기 사역원의 교수들은 조선에 귀화한 외국인이 많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원어민 강사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요즈음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토플이나 토익·텝스 관련 서적이 인기라면 조선시대 외국어 공부를 한 학생들에게는 '노걸대(老乞大)' 와 '박통사(朴通事)'가 베스트셀러 교과서였다고 한다. '노걸대'는 '참된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고려 상인이 압록강을 건너 중국 북경까지 가는 길과 산동지방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중국인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만든 책이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중국어 표현과 일반 지식들을 알려주는 책인데 그 내용이 뛰어났기 때문에 몽골어·일본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교재인 '박통사'는 중국 북경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지식을 서술한 책으로 의례적인 표현이나 사설체가 다수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역관들이 구사하는 중국어는 '북경어'였는데 혹시 중국 남쪽에서 조선으로 표류해온 중국인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서로 글로써 필담(筆談)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중국어는 북경어와 홍콩에서 쓰는 광동어(廣東語)가 외국어 만큼이나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역원내에서는 오로지 외국어만 쓰도록 했다고 하는데 외국어는 머리로 하는것이 아니라 암기가 중요했기에 그랬으리라.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