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전주에서 세제 대리점을 운영하던 김모씨(56)는 현재 대전지역으로 옮겨가 동네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한 때는 10명까지 직원을 고용하며 '사장'소리를 들었지만 대형마트의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김씨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했다.
대형마트의 기승에 단골 거래처였던 동네슈퍼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거래처가 사라지자 매출은 급감했고 정든 직원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며 대리점 운영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앙집중식 구매시스템을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물품을 공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지역경제에 기대 살던 대리점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설 곳을 잃어 현재 전주에 남은 대리점은 손에 꼽을 정도다"며 "대형 유통업체에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연이어 실업자가 다수 양산됐다"고 말했다.
전주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던 소규모 콩나물 생산업체 등이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의 영세업체와 자영업자, 그리고 그 속에서 취업해 있던 이들이 대형마트가 진출한 이래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도내 자영업자 등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 온 대형마트는 그러나 지역민의 고용 창출에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직원 채용은 대부분 본사 차원에서 이뤄지며 지역민 고용은 계산원 등 비정규직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 대형마트 진출 13년간의 변화
1997년 이마트 남원점이 문을 열면서 도내에 대형마트의 진출이 시작됐다. 현재 도내에는 대기업 직영 13곳, 특수법인 1곳, 지역법인 1곳 등 모두 15곳의 대형마트가 운영되고 있다.
13년간 15곳의 대형마트가 생기는 동안 지역 경제에는 적잖은 변화가 진행됐다.
'전북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최진원 이사장은 "대형마트의 진출로 1차 피해를 받는 이들은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고 들며 "하지만 2차 피해가 동네 학원 등 다른 자영업자에게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슈퍼, 대리점 등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대형마트와는 무관해 보이는 다른 자영업자에게 유탄이 돼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 이사장은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큰 예산을 들여 전통시장 활성화, 나들이가게 정책 등을 펼 필요가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무너져 가는 전통시장 등을 살리기 위해 예산을 쏟을 수밖에 없고, 그 돈은 결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2006년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센터가 내놓은 '대형유통점(대형마트) 진출이 지역중소유통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3개 늘어나면, 중소유통업은 전통시장 9.4개의 매출에 해당하는 연 1853억 원이 감소한다. 이 보고서는 특히 대형마트 출점으로 유통업 관련 실직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대형마트 신규출점으로 인한 고용은 약 1만8800명인 데 비해 전통시장의 고용감소는 약 2만6000명에 달한 것. 결국 7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 지역민 고용 창출은 외면
대형마트가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다 지역민을 고용하는 등 지역경제 기여도도 미미하다는 지적이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또 그나마 고용한 인원들 역시, 계산원 등 비정규직에 머물러 일자리의 질이 낮다는 문제제기 역시 끊이지 않았다. 이같은 비판에 도내 한 대형마트는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무기한 계약직으로 전환에 그쳐, 고용은 보장하지만 임금 등 처우는 아직까지 열악한 수준이다.
또 대형마트가 지역에서 고용한다는 인력 중 상당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거나 입점업체가 고용하는 인력이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경우 납품업체 등에서 임금을 주는 인력이어서 대형마트가 창출한 고용인력이라고 볼 수 없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직원 중 대형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이 채용하는 인력 역시 임금부담은 소상공인들의 몫으로 대형마트가 실제 지역에서 올리는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유통업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이창엽 시민감시국장은 "대형마트가 지역경제에 주는 악영향에 비해 지역에 기여하는 긍정적 효과는 너무 미미하다"며 "지역민에 대한 고용 창출과 일자리의 질에 대한 보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