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워서 여태 한 장도 못 태웠어요."
햇살 하나 없이 흐리고 잔뜩 쌀쌀했던 24일 오전.
겨울도 한 발 빨리 찾아오는 산동네 변흥수씨(80·전주 교동)의 집에 작은 기쁨이 배달됐다.
유난히 춥다는 올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며 전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대표 윤국춘)과 전주 동암고(교장 이병태) 학생들이 연탄 300장을 선물한 것.
아침부터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자 주름진 얼굴에도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있나. 고맙습니다.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변씨는 윤국춘(45·전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대표) 목사와 학생 200명의 손을 붙잡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무리 바람이 매섭고 추워도 연탄 한 장 마음대로 태우지 못했다는 변씨는 이내 굵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지난달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산 아래에서부터 한 장씩 한 장씩 오르락내리락 하며 연탄 200장을 나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올 여름부터 연탄 배달을 해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높은 동네라고 안 해주네요. 영감이 남기고 간거라 그건 차마 못 때겠어서…."
곳곳에 남아있는 남편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마른 장작도, 연탄 한 장도 마음껏 태우지 못했던 것. 남루한 문을 밀고 들어선 6.6㎡(2평) 남짓한 안방은 냉기가 돌아 싸늘했다.
이날 참여한 동암고 학생 200명은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로 봉사 활동에 두 팔을 걷어부쳤다.
김수현군(18·동암고3)은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을 직접 찾아가 돕기가 쉽지 않은데 수능 시험도 끝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맨 손으로 연탄을 나르느라 손도 얼굴고 새까맣게 변했지만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신나서 연탄을 나르는 학생들을 지켜보던 변씨의 얼굴도 어느새 평온을 찾았다.
전주 연탄은행에 따르면 전주시에는 변씨처럼 연탄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가정이 2000세대에 달한다. 이 중 1500세대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정도로 열악한 형편이어서 꾸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윤국춘 목사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산동네의 경우 배달을 해주지 않으면 연탄을 나르지 못해 추운 겨울을 그냥 버텨야만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며 "올해는 후원마저 크게 줄어 연탄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가정이 더 늘까 걱정"이라며 도민들의 나눔 실천을 당부했다.
이날 변씨와 전주 서서학동 2가구(각각 320장)에 전달된 연탄은 모두 동암고 교내동아리'연탄은행' 학생들의 성금으로 마련한 1700장 중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