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곳곳에 부안지역의 방폐장 사태를 연상케 할 만큼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쌀값 하락이나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규탄하는 깃발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째로 경남에 주지 말고 분산이전하라는 깃발이다. 그런데 어째 좀 작위적이고 촌스럽다. 깃발 하단의 단체들 이름은 관변 냄새를 물씬 풍긴다. 힘 없는 사람이 허공에 대고 "나 좀 도와달라"고 울어대 것 같다.
때마침 김황식 국무총리가 지난 26일 전북을 방문했다. 이걸 본 김 총리는 어떤 심정이었까. 그는 "LH 이전은 정부와 지자체가 협의해서 해결할 문제""두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모범답안이다.
그러나 자치단체간 협의가 물 건너간 게 언제인데, 그리고 작년말부터 해온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니 이처럼 알맹이 없는 수사(修辭)가 또 있을까. 일괄이전이란 언급이 없었으니 그나마 깃발 덕이라고 해야 할까?
정운찬 전 총리는 일괄이전을 얘기했다가 경남 편 든다는 반발이 일자 번복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일괄이전하는 게 옳다"고 했다가 전북 민심이 들끓자 "일괄이전 검토를 시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 발 뺐다. 2월4일 국회 답변 때 일이다.
소관 부처인 국토해양부의 정종환 장관 발언은 말바꾸기의 압권이다. 그의 발언은 줄타기 하듯 전북과 경남의 구미에 맞게 춤췄다. 전북의원 면전에서는 분산배치를, 경남 의원 앞에서는 일괄이전을 언급했다. 최장수 장관을 지내려면 유연성(?)이 이쯤은 돼야 하는 모양이다.
가장 화끈한 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언급이다. 지난 15일 전북을 방문한 그는 "LH가 전북에 올 수 있도록 하겠다. (경남) 진주 쪽에서 욕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상공인과 한나라당 당직자들 앞에서 한 발언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言如其人). 때문에 말은 신중히 해야 하고 한번 뱉어낸 말은 실천에 옮겨야 한다. 신언(愼言)은 군자의 필수 요건이다. 하물며 한나라의 국무총리나 장관의 말이 어떠해야 하는 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겠다. 진정성 없이 하는 말은 그냥 소리일 뿐이다. 그때그때 함부로 내뱉는 말을 방언(放言)이라 하는데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LH이전이 어떻게 결과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 이경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