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사 중 백성을 편안하게 해 준 임금을 회상하고 싶다. 왕조사에 따르면 제 9대 왕 성종(成宗, 1457~1494년)은 천품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고 서화에도 능하여, 특히 세조의 사랑이 진했다.
일찍이 예종의 모후 한씨가 성종을 잉태할 때 둥근 해를 품는 꿈을 꾸었는데, 이윽고 그를 낳자 관상쟁이가 보고 감탄하기를 "참으로 용과 봉의 자태에 해와 달의 기상이오이다" 고 하였다.
성종은 궐내에 농토를 장만하여 친히 경작함으로써 농업을 권장하고, 내전에 누에를 치게 하여 아낙네들의 잠업과 길쌈을 장려하기도 했다. 경로 정신을 배양하고자 해마다 궁중과 지방 관아에 노인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게 하고 쌀과 고기를 하사하였다. 학문을 숭상한 성종은 사서삼경과 경서를 편찬하여 널리 읽게 하였으므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성종 재위 때는 나라 안이 태평하여 백성들은 수시로 가무도 즐기었다. 집집마다 유창한 풍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성종이 국기일(임금과 왕비의 제삿날)을 당하여 몸소 종묘에 나아가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데, 웬일인지 그 날은 도성이 별나게 고요하였다.
괴이하게 생각한 성종은 좌우에 까닭을 물었던 바, "오늘은 국기일이므로 방자하게 노는 것을 삼가는 것인 줄로 아뢰오." 하는 대답이었다. 성종은 말하였다. "옛 사람은 풍악을 베풀어 제사를 지냈다 하거늘, 이제 국기일이라 하여 만백성이 즐기는 풍악을 못하게 함은 부당한 짓이오. 선왕의 뜻도 그렇지 않을 것인 즉, 이후부터는 국기일에도 풍악을 잡히고 기쁘게 놀도록 하라."
이야말로 너무나 놀라운 분부였다. 그 후부터는 국기일에도 풍악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성종은 학식이 높으며, 백성 위주의 왕정과 치세의 일념으로 성덕(聖德)을 베풀었기 때문에 조선왕조 역사상 태평성세를 이루게 되었고, 필자는 청사에 길이 남을 사적이라고 해석한다. /강병원 (전 전라북도 도지 집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