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미친 존재감

김영수 (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관장)

이즈음 TV는 예능프로그램이 대세다. 얼마 전 만해도 '오락'이라 불리던 프로그램들이 어느새 '예능' 이라는 이름으로 각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망가지기 오락이 펼쳐지는 예능에서는 더 유치하게 망가질수록 뜬다. 점잔 빼면 방송분량도 못 채우고, 욕먹고, 그리고 존재도 없이 사라진다. 평소 점잖은 위인들이 망가질수록 시청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예능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망가지지도 못하고, 자기 순서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친 존재감'이라 일컫기도 한다. 방송 등에서 별다른 분량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의 외모, 스타일 등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미친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존방식이다. 때로는 미친 존재감에서 생겨난 열등감은 막장표현이나 무모한 과잉노출로 보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충격을 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의미의 미친 존재감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 작용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를 만들어 간다.

 

언젠가 부터 우리 사회도 예능을 표방한 오락프로그램인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닮아가는 듯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정치판에서 펼쳐지는 '예능정치'와 '막장정국'을 보게 된다. 국회는 폭력으로 얼룩지고, 농성과 본회의장 점거가 판을 친다. 여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바라는 국민을 위해 단독으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우긴다. 야당은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정권의 독재에 맞서서 국민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이 위하는 국민, 그들과 함께 싸울 국민들이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한다는 사람들, 국민과 함께한다는 사람들의 존재감은 국민에게서 나와야한다. 즉 국민의 존재감이 그들의 존재감을 형성해주는 기반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지금 이 정권의 존재감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정권유지와 가진자들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 아래서 국민들은 더욱 미친 존재감에 사로잡혀가고 있다.

 

전북의 현안문제를 두고 도시와 시골거리에 도배 하다시피 한 현수막과 온갖 기관과 단체가 동원된 궐기대회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를 들으며 우리의 존재감을 생각하게 된다. 몇 년 전 광우병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미국소의 수입을 결정한 한국정부의 소식을 전한 로이터 통신의 기사에 이런 댓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미친 소, 미친 대한민국, 미친 대통령, 미친 사람들, 미친 사회.' (Mad Cow, Mad ROK, Mad President, Mad People, Mad Society)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우리가 대응해야 할 현안들에 대하여 앞장서서 고민하고 준비했어야 할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존재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묻게 된다.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친 존재감으로 승부하는 막장사회의 습성이다. 그러나 진정한 존재감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드러난다. 아무도 알아듣지 않더라도, 당장에는 아무 것도 드러나는 것이 없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한 해를 보내며 우리 사회가 소외시켜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세상 모든 작고 힘없는 존재들을 깊은 어둠속으로 밀어 넣어 미친 존재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막장사회를 만드는데 나 역시 한 손 거들고 있지는 않는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다.

 

/ 김영수 (천주교 전주교구 천호성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