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은 민중에 의해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적인 문화다. 옛 사람들의 풍류가 살아 있는 동진강도 그만의 독특한 민속을 가지고 있다.
▲ 김제
도작문화의 근원인 벽골제. 김제는 농경문화에서 창출된 여러 민속놀이가 있다. 벽골제의 쌍룡놀이와 풍년을 비는 마을당제 때 행하는 선돌줄다리기, 우도농악이 원평천과 두월천을 축으로 한 김제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백제시대에 쌓았다는 벽골제는 2천여 년의 역사에 걸맞게 숱한 사연들이 전해진다. 단야 낭자와 쌍룡의 전설이 대표적이며, 벽골제쌍룡놀이는 벽골제 인근 웅덩이에 살던 청룡이 벽골제방을 부수려는 것을 단야 낭자가 몸으로 막자 청룡이 감동해 물러났다는 설화를 춤과 노래, 현란한 움직임으로 재연한 것이다. 벽골제를 지키고 풍년과 인간 화합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던 단야 낭자의 정신은 쌍룡놀이가 전하는 주요 메시지다. 매년 10월 지평선축제 기간에 열리며,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동쌍룡놀이와 쌍룡횃불놀이 등으로 진행된다. 197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민속놀이 부문 최우수상인 문공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됐다.
선돌줄다리기는 두월천이 흐르는 입석동의 월촌동사무소 앞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입석(立石) 앞에서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면 시작된다. 벽골제를 쌓고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과 벽골제 사이에 당재와 토끼재를 연결하는 능선이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어 터가 세기 때문에 이를 누르기 위해 김제동헌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여자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로 늘 여성들의 함성으로 줄다리기가 끝나면 선돌에 감겨 있던 묵은 줄을 풀고 새 줄을 감는다. 당산제가 끝나면 술과 떡을 나누어 먹고, 석주의 주변을 돌면서 풍물놀이를 즐긴다.
김제의 농악은 전형적인 호남우도농악이다. 명절이나 칠월 호미씻기가 되면 각 마을 단위로 농악놀이가 성행했으며, 특히 추석에는 두 마을의 줄다리기와 함께 농악놀이 경합이 매우 극렬했다고 전한다. 김제의 농악은 상쇠 김도삼과 나도숙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들은 군진법을 중심으로 한 판굿에 있었는데, 현판금·이막동·백남윤·김문달·박판열·이준용으로 계승돼 이 지역 풍물굿의 주류를 형성했다. 지금도 전북도 지정무형문화재 제7-3호인 박판열과 이준용의 굿이 전승되고 있다.
동제는 원평천이 흐르는 금산면 금산리 산신제와 봉남면 종덕리 왕버드나무(천연기념물 제296호) 당산제, 봉남면 행촌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0호) 당산제, 부량면 대장마을 당산제, 두월천이 흐르는 금구면 선암리 유령당산제 등이 있었다.
▲ 정읍
호남 우도농악의 대표 격인 정읍농악은 192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정읍을 중심으로 보천교(정읍 입암면 대흥리에 본부를 둔 민족종교)가 들불처럼 일어났는데, 보천교가 민족종교로 크게 부흥하면서 농악을 종교음악으로 지정하고 우대했기 때문이다. 호남 우도풍물의 판이 갖춰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정읍을 중심으로 호남 서해안 평야지대에서 우도농악이 위세를 떨쳤고, 박남식·전사섭·이봉문을 필두로 쟁쟁한 장인들이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모두 작고하고, 전북도 지정무형문화재 제7-2호인 유지화와 김종수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찬란했던 정읍농악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3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정읍의 농악 관계자들이 우도농악에 대한 꾸준한 발굴 작업을 시도했고, 산야에 묻혀있던 무명의 농악인들을 판으로 이끌어내는 한편, 유지화 명인을 정읍으로 초청해 정읍농악을 체계적으로 전수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읍농악단이 만들어졌고, 유지화·김종수 선생의 지도하에 후진 양성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정읍농악은 굿가락이 다양하고 리듬이 다채롭다. 웬만한 사람은 가락을 따라 치기가 어려울 정도로 박자가 난해한데, 2분박과 3분박의 절묘한 혼합박은 정읍농악 가락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정읍농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포놀음'이다. 쇠꾼이 쓰는 상모를 부포상모(일명 '뻣상모')라 하는데 웬만한 사람은 흉내 내기조차 힘들 정도로 그 놀음의 기예가 어렵다. 정읍농악 유지화 명인이 부포놀음의 최고 명인이며, 김종수 명인은 멋진 춤사위와 발림이 담긴 소고놀이가 으뜸이다.
태인천이 흐르는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 태인고현동향약(泰仁古縣洞鄕約·고현은 칠보의 옛 이름)의 향음주례와 전통혼례는 가을에 재현된다. 고현향약은 1470년 벼슬에서 물러난 불우헌 정극인(1401~1481)이 처가가 있는 태인에 내려와 만든 것으로, 퇴계 이황의 예안향약(1556년)보다 80여 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최초 향약이다. 16세기 말부터 1977년까지 기록된 향약 자료집은 1993년 보물 제1181호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당제는 마을 부녀자들의 '단속곶 춤'으로 액을 몰아내는 북면 오류리 당산제와 '당산 할미의 옷을 입힌다'는 산외면 정량리 원정마을 당산제, '열두당산'으로 유명한 칠보 백암리 원백암마을 당산제 등이 있다.
▲ 향제풍류의 발상지 동진강
동진강은 향제풍류의 발상지다. 향제풍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태인 출신의 전계문(1872~1940)과 이를 발전시킨 전용선(1888~1946)이 정읍에 터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읍풍류는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이리풍류와 구례풍류의 초석이 되기도 했다. 이리풍류의 강낙승·황상규와 구례풍류의 김무규 등이 정읍 초산율계의 율객이었던 전추산·김윤덕 명인의 제자들이었다.
절묘하고 애절한 선율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풍류음악은 민간의 풍류방에서 스스로 수양하거나 명상하듯 즐기는 음악으로, 지방에 전승되는 현악영산회상인 향제줄풍류는 지방 풍류객들의 호방한 음악성이 반영돼 흥취가 높다.
현재 민간풍류가 살아남아 영산회상을 줄풍류로 이어가고 있는 곳은 정읍과 이리, 구례 세 곳. 정읍풍류는 <초산음률회> 라는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는데, <샘기픈소리> (대표 김문선)가 정읍풍류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샘기픈소리> 초산음률회>
/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