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회장은 1963년 김제 원평에서 8남매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전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평범한 '전라도 촌놈'이었다.
그가 아주 어릴 때는 부친의 나전칠기 사업 성공으로 한때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 적도 있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한 옛 이야기일 뿐이다.
큰형이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물밀듯 밀려 들어온 기성가구들로 인한 변화의 바람 앞에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스물세 살 많은 큰형 집에서 먹고 자며 학비는 야구르트 배달을 하던 누나와 교편을 잡던 작은 형이 번갈아 도와주곤 했다. 용돈이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이렇듯 뼈아픈 가난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 회장은 청소년 시절 방황을 하면서 가출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익산의 어느 자장면 집에서 힘들게 일 하던 그를 찾아낸 큰 형수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대입을 앞두고 있을 때는 친구덕분에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했다. 항공대와 동국대 입학원서 두 장을 어렵게 구한 뒤 기차표 값이 없어 친구에게 접수를 부탁했더니, 이 친구가 항공대 원서를 슬그머니 돈으로 바꿔 유흥비로 쓰고 동국대에만 원서를 접수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없이 동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대학 시절엔 점심 라면값이 없어서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이렇듯 이 회장은 가난의 쓰라린 경험을 체험하며 인생 역전을 위한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가난한 고학생 신세에도 불구하고 '민주언론'을 표방한 한겨레신문이 국민주주를 모집할 때는 아르바이트로 꼬박꼬박 모아둔 200만원을 아낌없이 털어 20년 세월동안 변함없는 주주로 남아있는 '억척'도 있다. 당시 200만원은 가난한 그에게 일년치 생활비였다.
가난한 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변화를 준 것은 대학시절 H선배. 젊은 나이에 성공했던 그 선배는 이 회장에게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는 한 마디를 던졌고, 그 말에 이 회장은 밤새 속울음을 삼키면서 그날 밤 20년의 인생설계를 했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현대증권 샐러리맨에서 시작한 그는 이스타항공그룹이라는 중견그룹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