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체육 비사] ⑨서오석 전북도청 양궁감독

'유망주 발굴 마법사'…금메달 제조기

활 쏘는 자세를 하나씩 끊어가며 시연해 보이는 서오석 감독. (desk@jjan.kr)

전북도청 양궁팀 서오석 감독(54)은 스타선수 출신이 아니지만 무명인 박성현과 이성진을 발굴해 세계를 제패한 최고의 지도자다.

 

'국내 최고령 남자 양궁감독''금메달 제조기'로 일컬어지는 서 감독은 인천 선인고와 강원 영서전문대, 수원시청 등지에서 10년 남짓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로선 평범했으나, 지도자로서 서 감독은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그는 대구서구청 감독, 동서증권 감독을 거쳐, 지난 99년부터 12년째 전북도청 양궁팀 감독을 맡고있다.

 

동서증권이 부도나 하루아침에 선수들이 오갈곳 없게되자 자신의 집에서 일년동안 숙식을 함께 하며 각종 대회에 출전시켰다.

 

이러한 모습을 눈여겨 본 양궁계의 거목 김일치(부안 출신) 대한양궁연맹 감사의 권유로 전북도청에 팀 창단을 하면서 감독으로 부임한다.

 

체육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체육상을 수상한 서 감독은 거상장과 청룡장 등 훈장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영광이 있기까지 서 감독은 소중한 '건강'을 잃었다.

 

긴장으로 인해 하루에 2∼3갑씩 피우는 담배와 20년 넘게 집을 떠나 생활하면서 불규칙한 식습관이 거듭된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양궁감독을 하겠다"고 말한다.

 

한 순간의 장면을 떠올리면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양궁 결승때의 일이다.

 

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전북도청 서오석 감독과 박성현·이성진 선수가 금메달 색깔을 결정할 때의 모습은 두고두고 화제였다.

 

"전북도청 팀 소속 감독과 선수 두명이 금메달, 은메달을 구분하기 위해 경기를 벌이는 모습이 전세계에 생중계될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는게 서 감독의 회고다.

 

박성현의 발탁은 서오석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림픽이 있기 3년전, 전북체고 3학년이던 박성현은 갈곳이 없었다.

 

군산에서 초·중학교때 양궁을 한 박성현은 전북체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전국대회 겨우 동메달 하나 따낸 초라한 성적으로 명문인 한국체대, 경희대는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많은 보수와 미래가 약속된 실업팀은 언감생심 원서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전주종합경기장 근처에 있는 양궁장에서 훈련하던 박성현의 모습을 지켜본 서 감독은 그를 일약 전북도청팀 선수로 발탁한다.

 

"실력은 보잘 것 없었는데 한눈에 파워와 순발력이 돋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잘 키우면 되겠다 생각하고 바로 입단시켰죠"

 

서 감독은 이후 박성현을 조련해 세계 최고의 선수로 키웠다.

 

마치 히딩크 감독이 오갈곳 없던 박지성을 발탁,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키워낸 것을 연상시킨다.

 

충남 홍성 출신의 이성진도 마찬가지다.

 

전북도청팀에 데려온 첫해 올림픽에 참가시켜 이후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따냈다.

 

500여 명의 선수가 군웅할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국내 여자양궁에서는 "세계대회 우승보다 국가대표 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정설이다.

 

서오석 감독은 전북도청 선수중 박성현, 이성진은 물론, 한경희까지 국가대표로 만들었고, 김민정, 홍지연, 오유현도 이미 국내 정상급 선수로 키웠다.

 

평소엔 친딸처럼 선수를 아끼지만 훈련에 돌입하는 순간 서 감독의 눈매는 확 달라진다.

 

국가대표 감독시절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시고도, 6시에 정확하게 출근한 그를 보고 태릉 선수촌에선 모두 혀를 내둘렀다.

 

지도과정에서 화를 내지 않지만 선수의 각성을 요구하는 일은 많다.

 

선수가 방심해서 노란색(9∼10점)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빨간색(7∼8점) 과녁을 맞추면 달려가서 한대에 6만원 하는 화살을 부러뜨리고 눈물이 쏙 빠지게 설득하곤 한다.

 

친자식처럼 여겼던 박성현 선수의 결혼소식이 (감독이 모른 상태에서) 2008년 올림픽 직후 일부 언론에 보도됐을때, 그는 박 선수와 그의 부모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크게 화를 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2관왕이 되면 말하려 했는데 금1, 은1에 그쳐 미처 말하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는 선수의 말을 듣고 눈물을 닦아주며 결혼식장으로 향했던 일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