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겨울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소한(6일)과 대한(20일)을 용케도 알아낸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이젠 겨울에도 추위나 눈을 구경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소한과 대한 추위는 역시 한겨울임을 실감케한다.
모두가 움추리고 있는 이때, 썰매장은 제철을 만난 듯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눈이나 얼음을 제치며 씽씽 달리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에는 학교나 학원에 다닐땐 볼 수 없었던 함박웃음이 피어나곤 한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한 것처럼 부모들이 어릴적 얼음을 지치고, 엉덩방아를 찧어가면서 느꼈던 동심(童心)은 자녀 세대에 이르러 똑같이 나타난다.
그게 바로 자연의 섭리다.
한 세대 전만해도 오락이 별로 없었다.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TV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항상 계절을 쫓아 놀이문화를 즐기곤 했다.
이맘때면 연날리기, 팽이치기, 자치기 등이 유행했고 그중에서도 썰매타기는 단연 인기가 가장 많은 종목이었다.
동네 뒷동산 야트막한 언덕에서 비료포대를 이용해 죽∼하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재미는 상상을 초월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가세하고 나면 저녁때쯤 되면 마치 얼음판처럼 번들번들 윤이 날 만큼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였다.
동네앞에선 이른 아침부터 얼음썰매 경연대회가 열리곤 했다.
논에 방방하게 채워진 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저마다 손수 만든 스케이트를 가지고 나와 씽씽 달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눈썰매든, 얼음 썰매든 오래 타다보면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 모닥불을 피워놓고 말리다 보면 나일론 양말은 뻥뻥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그로인해 누구나 한번쯤 부모님께 눈물이 쏙 빠지게 꾸중을 들은 추억이 있다.
손이나 발에 동상에 걸려 겨울내내 피부에 바르던'안티프라민'을 잊을 수 없고, 고구마를 구워먹던게 엊그제의 추억이다.
지난 8일 제주도 한라산을 찾아 어리목∼윗새오름 구간을 등산하면서 느낀 점 역시 "동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록담 바로 아래까지 숨을 헉헉 거리며 오른 사람들은 내려갈때면 너나없이 눈썰매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어른들도 모종의 동심을 느낀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한 세대가 지난 요즘, 어린이들은 썰매장에서 어떤 모습일까.
지난 12일 낮 임실 관촌 사선대에 있는 해피랜드 눈썰매장을 찾았다.
공교롭게 우석대 영어캠프에 참가중인 초·중고생 180명이 외국인 교사와 함께 몰려와 시끌벅적했다.
현장에서 만난 정예지(정읍 한솔초3)는 처음 타보는 바이킹이 무서워 탈까말까 고민하다가 얼떨결에 탔는데, 친구들과 함께 맘껏 소리지르다 보니 두려움은 벌써 없어지고, 즐거움에 탄성을 질렀다.
하얀 눈 위를 날아가는 듯한 기분의 썰매, 외국인 선생님들과 장난치며 먹은 라면.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즐겁고 따뜻한 하루였다.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웠던 선생님들과 같이 놀고나니 수업시간에도 좀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도 눈썰매의 즐거움을 잊지 못했다.
역시 이곳을 찾은 임수영(정읍 정일여중 1)은 "해피랜드에 가서 너무 추웠지만 친구들끼리 서로를 많이 감싸주고 보호하면서 따뜻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신난 표정이었다.
좀 무서웠던 바이킹도 타고, 영어캠프에 와서 친숙해진 친구들, 선생님들과 신나는 썰매도 탄게 제일 즐거운 일이다.
제대로 시설이 갖춰진 빙상경기장에서 스케이트화를 신고 얼음을 지치거나, 멋진 스키장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올땐 느끼지 못하던 동심을 눈썰매장이나, 얼음 썰매장에서만 발견하게 되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