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문제를 놓고 달콤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복지(福祉)문제는 국가재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심사숙고해야 한다. 국민들이 덜 내고 많이 받으면서 국가재정도 튼튼하고 경제발전도 계속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그러나 복지혜택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듯 마냥 베푸는 그런 시혜(施惠)가 아니다.
소위 민주주의의 아킬레스건(腱)이라는 포퓰리즘이 복지문제에서 제일 두드러진다. 어떤 사람의 주장은 부자세를 신설하여 부자로부터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에게 그만큼 베풀면 복지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방정식이어서 좋다. 마치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는 식이다.
고대 그리스 철인이었던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위험성은 포퓰리즘에 있다고 했다. 그는 깨끗한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철인(哲人)의 정치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고대 중국의 공자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중국의 전설적 인물인 요(堯 )임금과 순(舜)임금을 추앙하여 그 분들의 백성에 대한 덕정(德政)을 이상정치로 보았다. 요임금 순임금도 어찌보면 철인(哲人)에 가까운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원한 인물이 아닐지라도 당대의 인기에 연연치 않고 오직 후세의 평가에 의미를 찾는 소신있는 정치인이면 족할 것이다. 조선의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할 때 집현전 학자들 거의가 반대를 하고 오직 신숙주 혼자만 찬성을 했다고 하는데 그 때 요즘의 포퓰리즘에 세종대왕이 빠졌다면 한글창제는 아마도 물건너갔을 것이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포퓰리즘을 떠나 소위 영국병이라는 강경 노조파업을 법대로 강경 진압했다. 1980년대 영국에서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했던 노조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고 부당한 파업으로 피해가 있을 때는 노조측에 배상책임을 묻는 초강경 정책도 불사했다. 복지문제는 국민들이 달콤한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다.
복지문제의 포퓰리즘은 마치 중국 고사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처럼 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아침에 도토리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주겠다는 제의에 원숭이가 성을 내니까 아침에 도토리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제의하는 꼴이나 같다.
/ 장세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