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매화꽃은 두 세 가지 피었어라(窓外梅花兩三枝)
시객(詩客)과의 기약을 지켜 이룬 경치려니(詩家景致每相期)
아, 이제 오얏꽃 복사꽃 아니라고(如今莫道春風晩)
봄바람 더딤을 말하지 말라.'(李白桃紅未發時)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인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80·고하문학관 관장)는 매화를 사랑하는 선비다. 잔설 속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려 그윽한 향기를 퍼뜨리는 매화는 세상의 부침에 연연하지 않고 뜻을 곧게 지키는 선비의 정신과 닮았다. 그는 김철기(1889~1952)의 '이월시견매화음(二月始見梅花吟)'을 읊으면서 "이 한 수 만으로도 번화함을 멀리하고 조촐하게 세상을 산 한 시인상을 대할 수 있다"며 "시설스럽고 낙낙하지 못한 마음을 이 시 한 편으로 비추어 본다"고 했다. 그가 펴낸 「詩를 생각한다」(시간의 물레)는 유독 매서웠던 추위에 꽁꽁 언 마음을 매화 향기로 녹여주는 시화수필(詩話隨筆)이다. 지난 1969년부터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는 「전북문학」에 연재된 '시를 생각한다' 를 엮어낸 것으로 시를 이야기하는 수필. 고려 때부터 구한 말까지의 한시들을 소개, 담담하고 조용한 어조로 시에 얽힌 이야기를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책이 될 수 있을까, 책의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5언 절구와 7언 절구로 글자수가 정해진 정형시를 주로 했어요. 향토 서정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곳곳에서 한시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삶의 이치와 진리에 접근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분국(盆菊)'은 실학자 안정복(1712~1791)이 72세 때 쓴 작품. 그는 늙어서도 국화가 오상고절(傲霜孤節)로 스스로의 삶을 닦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작(詩作)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고 적었다. 한평생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선비정신으로 가꿔온 그도 울창한 시의 숲을 보면서 '공부하는 겸허함'으로 배우게 됐다는 것이다. 겸허하고 성경(珹敬)을 다한 그의 이야기에 오랜 세월 풍상을 겪어온 매화 같은 품격을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지닌 선비정신의 예술적 표상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