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고질적인 지역장벽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석패율 제도를 제안했다. 여야 취약지역에 석패율 제도를 선택 적용, 영남과 호남에서 여야 국회의원이 함께 선출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지역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석패율 제도도 하나의 시스템일 뿐이다. 지역장벽의 진정한 극복을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지역정서의 치유가 병행되어야 한다. 호남과 영남, 특히 약자로 소외받아온 호남인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나 마음의 문을 열어야 소통과 화합이 이뤄질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오직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그 사실만 변하지 않을 뿐이다. 지역주의도 마찬가지다. 지난 30여년간 변함없이 이어졌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지하다시피 지역주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하에서 시작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과, 그에 맞서 민주화에 모든 것을 헌신한 김대중 총재. 영남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두 정치적 거목의 대립과 투쟁으로 인해 지역주의가 잉태되었고,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집권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통해 극에 달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민주화는 성취되어 독재와의 대립구도도 사라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으로 정권교체도 경험했다. 지역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대립과 투쟁의 기반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지역정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실체는 사라졌는데 그림자만 남아 도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소통과 화합을 가로막고, 지역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세계 경제의 중심도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시대가 저물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에도 서해안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서해안의 배꼽인 새만금을 축으로 3만불, 4만불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국가식품클러스터도 전북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호재다. 그러나 지역주의에 묶여 이러한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경제는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와 교류한다. 온 세계가 시장이 되고 파트너가 된다. 무한경쟁이요, 글로벌시장이다. 그런 만큼 서해안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도민들이 먼저 지역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북발전을 위해서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를 풀고 소통과 화합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민주화에 쏟았던 지혜와 역량을 경제발전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필자는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여야가 함께 가는 쌍발통시대를 주창한 필자에게 도민들은 18.2%라는 사상 최고의 지지율로 화답해 주셨다. 6~7%에 불과했던 그동안의 지지와 비교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제 겨우 불빛이 보였을 뿐이다. 내년에는 총선이 있고 대선도 있다. 도민들께서 왜 쌍발통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다가오는 총선 전에 석패율 제도를 도입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도민들 또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지역장벽을 극복하고 서해안시대를 활짝 열게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의 소명이요, 전북의 시대정신이다.
/ 정운천(한나라당 최고위원)